지금은 궁금한 것도, 필요한 지식도 모두 유튜브에서 검색해 영상으로 보고 배우는 '보는 사람'의 시대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편하게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제공하는 플랫폼을 두고 애써 책을 읽는 것은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일 수 있습니다. 책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쳐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유튜브가 대세인 이 시대에 '보는 인간'을 '읽는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요?
◆ 공감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깊이 읽기'의 힘

인간 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읽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깊이 읽기(딥 리딩·Deep Reading)는 독자가 문장에 담긴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타인의 관점으로 옮겨가게 도와주며, 유추와 추론을 통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세계의 정보들은 편리함을 가져다준 대신 깊이 있는 능력을 거둬갔습니다. 미국인 한 명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약 34GB(기가바이트), 약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가까운 양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텍스트를 읽고 있지만, 이런 식의 읽기는 집중적인 읽기가 되지 못하고 가벼운 오락거리에 그칠 뿐입니다.
UCLA 난독연구센터장인 매리언 울프는 책 '다시, 책으로'에서 디지털 읽기에서는 '훑어보기'가 표준이 됐다고 말합니다. 'F자형' 혹은 '지그재그형'으로 텍스트의 내용을 재빨리 훑어 맥락을 파악한 후 결론으로 직행하는 이런 방식은 세부적인 줄거리를 기억하거나 주장의 논리적 구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더 큰 문제는 디지털 매체로 많이 읽을수록 우리의 뇌 회로도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더 많이 반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깊이 읽기가 가져다주는 것들, 즉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같은 본성들도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매리언 울프는 '깊이 읽기'야말로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사고 과정인 비판적, 추론적 사고와 반성적 사유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을 기르게 해주며 타인의 관점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라 말합니다.
결국 아이들이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깊이 읽기 능력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소금과 후추'를 곁들인 책읽기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는 인간보다 책을 더 사랑하는 여우 아저씨를 통해 책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책을 좋아하는 여우 아저씨는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먹어치움으로써 교양에 대한 욕구뿐만 아니라 식욕도 채웁니다. 책을 먹을수록 식욕은 더욱 왕성해지니 가난한 여우 아저씨는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의 천국인 도서관을 발견합니다. 도서관에서 짐승의 냄새를 풍기며 책을 훔쳐 먹는 여우 아저씨의 음산한 행동은 무섭기는커녕 읽는 이들의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합니다.
여우 아저씨의 독서 비법인 '소금과 후추'는 무엇을 뜻할까요? 음식에 양념을 넣듯이 자기의 관점과 생각을 덧뿌려 잘근잘근 씹어 먹는 독서가 중요하다는 걸 의미할 것입니다. 한 작품은 새로운 해석에 따라 재창조되기도 하니, 독자 나름대로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어야 하는 것이지요.
'책 먹는 여우'가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묵직합니다. 이 책은 여우 아저씨가 책을 먹는 것처럼 책과 혼연일체가 되는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글입니다. 변치 않는 책에 대한 사랑을 가졌던 이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이만큼 발전해 왔습니다.
미래의 디지털 문해력 교육은 글을 소비하는 법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깊이 있는 독자를 길러낼 것인가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독자를 책의 세계, 즉 깊이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 첫 단계가 돼야겠지요.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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