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쏟아지는 쓰레기] <3> 내가 내놓은 플라스틱, 어떻게 재활용될까?

입력 2019-08-15 16:33:21

17일 오전 대구 동구자원재활용센터에서 직원들이 수거된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7일 오전 대구 동구자원재활용센터에서 직원들이 수거된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직장인 A(31) 씨는 아침이면 폴리염화비닐(PVC)제 자명종 시계를 끄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어 욕실로 들어가 폴리에틸렌(PE)으로 만든 샴푸통을 몇 차례 짜낸 다음 머리를 감는다. 세수를 끝내고서는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겉옷을 걸치고,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병에 든 과일 음료를 마신 뒤 집을 나선다.

A씨가 출근을 준비하는 짧은 시간 사용한 제품은 대부분 '플라스틱' 제품이다. 한국은 2016년 기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 132.7㎏을 발생시켜 세계에서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쓰는 국가가 됐다. 쉽고 값싸게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데다 좀처럼 썩지 않는 특징이 현대 한국인의 생활습관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이제 공공의 적(敵)이 됐다. 썩지 않는다는 특징이 도리어 단점이 된 것이다. 버려진 플라스틱이 수백 년 동안 썩지 않은 채 바다 위를 떠다니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잘게 부서진 조각들은 '미세 플라스틱'이 돼 사람의 건강마저 위협한다. 이를 줄이려면 사용이 끝난 제품을 수거한 뒤 재활용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한국에서는 여의치 못한 형편이다.

◆음식물·담배꽁초까지, 절반은 '쓰레기'

"이런 것들 좀 보세요. 전부 쓰레기입니다. 저희가 따로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해요."

최근 찾은 대구 동구의 한 자원재활용센터. 이날 수거된 재활용품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선별장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10명이 넘는 직원들이 고무장갑과 마스크를 낀 채 쉴 새 없이 내려오는 재활용품을 분류했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재활용품의 실질적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는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연면적만 2천796㎡에 이르는 이 선별장에만 동구 전역에서 하루 평균 42t의 재활용품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중 실제 재활용되는 것은 절반가량에 불과하다는 게 재활용센터 측의 설명이다.

대구 동구재활용센터에서 직원들이 재활용품을 선별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대구 동구재활용센터에서 직원들이 재활용품을 선별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벨트 위에는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가 더 많았다. 검은 비닐봉지를 뜯자 안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지는가 하면 종이 박스에는 먹다 남은 닭뼈가 우수수 떨어졌다. 자동차 에어필터를 '종이'로 배출한 경우도 있었다.

분류 직원 여영란(58) 씨는 "폐기물 더미 속에서 제대로 된 재활용품을 찾아내 재활용하기란 정말 어렵다"며 "특히 겉은 재활용품으로 보이지만 안에는 가위나 칼 등 날붙이가 들어 있는 사례도 잦아 파상풍 예방접종을 꼭 맞는다"고 털어놨다.

동구 재활용센터를 운영하는 ㈜유창알앤씨 이상욱 본부장은 "센터로 들어오는 물건 중 애초부터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들이 20% 정도고, 담배꽁초가 든 음료수 병처럼 멀쩡히 재활용할 수 있지만 이물질이 묻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40~50%가량이 쓰레기"라고 했다. 이 쓰레기들은 모두 업체가 추가 비용을 들여 처리해야 한다. 이 본부장은 "재활용이란 '이물질이 없는 깨끗한 물건'이라는 전제 아래 이뤄지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재활용품의 껍데기를 쓴 쓰레기' 없어야

플라스틱 재활용품은 주로 달걀 케이스 등 플라스틱 케이스를 만들거나, 기능성 섬유로 재탄생한다. 단, 전제가 붙는다. '품질이 좋은' 재생 원료여야 한다는 점이다. 플라스틱 재생 원료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는 이물질과 덧입혀진 색상이 주로 지적된다.

표면적으로 우리나라의 재활용률은 높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전국 폐기물 재활용률은 81%, 대구는 61.2%에 달했다. 환경부가 2017년 발표한 제5차(2016~2017년)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서도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 중 69% 이상이 분리배출된 것으로 나온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서도 한국의 폐기물 재활용률은 독일(65%)에 이어 59%로 세계 2위였다.

대구 동구재활용센터에서 한 직원이 새척,분류를 마친 재활용품을 크레인으로 옮겨 싣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대구 동구재활용센터에서 한 직원이 새척,분류를 마친 재활용품을 크레인으로 옮겨 싣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하지만, 문제는 어디까지가 '재활용품의 껍데기를 쓴 쓰레기'인지 누구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재생 원료의 '품질'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분석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2년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재활용 시설별 실질 재활용률 산정 및 활용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재활용 시설로 유입되는 폐기물 양을 실질 재활용량과는 무관하게 전부 재활용량으로 산정한다. 일단 재활용 시설로 들어왔다면 재활용이 됐든 안됐든 재활용량으로 모두 산정한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재활용'과 정부가 발표하는 '수치상 재활용'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실정이다. 업계에선 "업체에서 다시 비용을 들여 처리하는 쓰레기 때문에 실제 재활용률은 정부 발표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왜곡을 막으려면 가정에서의 분리배출이 가장 중요하지만, 제품을 만들 때부터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제작하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색깔이 들어 있는 음료수 병 ▷나일론을 겹쳐 만든 갈색 맥주병 ▷진한 색깔의 샴푸통 등은 재활용에 추가 공정이 필요한데다 결과물의 품질도 떨어져 아예 재활용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 유색 페트병은 재활용해도 질이 떨어져 저급 솜을 만드는 데 쓰거나 고체연료로 태워진다.

환경부는 지난해 중국발 '폐기물 대란'에 대한 종합대책에 유색 페트병 등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을 2020년까지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산업혁신연구실 연구위원은 "재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지자체 단위에서 원룸촌을 비롯한 취약지역의 분리배출을 유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이 외에도 국가적으로는 제품 생산단계에서 폐기물 수거를 배려한 설계를 요구하거나, 기계적으로 성분별 분류를 해주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