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생각나서 웃네, 그녀를 괴롭히는 그 자식이 빠지라고 물웅덩이 메운 뒤에 그 위에 마른 흙들을 덮어뒀던 그때 생각/그때 생각나서 웃네, 그 자식은 안 빠지고 어머야 난데없이 그녀가 풍덩 빠져 엉망이 되어버렸던 열두어 살 그때 생각/(중략)/그때 생각나서 웃네, 혼자 남아 청소할 때 그녀가 양동이에다 물을 떠다 날라주어, 세상에 변소청소가 그리 좋던 그때 생각'
문학평론가 박진임은 시인 이종문의 시조의 특징을 3가지로 압축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춘풍 황앵이 난초를 물고 세류 중으로 넘노는 듯한 봄날의 서정"성이며, 두 번째는 "북해흑룡이 여의주 물고 채운간으로 넘노는 듯한 풍자와 과장과 상상력"이며 마지막은 "단산(丹山)봉황이 죽실(竹實)을 물고 오동 속으로 넘노는 듯한 기억이 시가 될 때"라고.
평론에서처럼 지은이 이종문은 고운 시어들을 모아 한 폭의 수채화 같이 단아한 시세계를 보여주는가 하면, 경상도 방언이 그대로 텍스트에 채록되면서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낼 듯이 그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으로의 회귀를 통해 삶의 위로를 찾아가는 지은이의 작시법은 눈물을 동반하게 만드는 영혼의 울림과도 같다.
'모처럼 어머니와/함께 자는 밤이었다/창밖엔 귀뚜라미가/(중략)/슬며시 눈을 뜨니/어머니가 바투 앉아/날 빤히 보고 있었다/볼이라도 맞출 듯이/(중략)/"엄마 와?"하고 물으니/"좋아서"라고 했다/"뭐가요"하고 물으니/"그냥 좋아"라고 했다'
엄마는 아들이 무턱대고 좋아 마냥 바라본다. 이런 장면은 누구나 있을법한 흔한 기억의 한 조각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또한 인류의 보편적 기억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지은이는 그것을 시로 쓰고 있다. 그의 시조가 친근하고 시집을 좀체 손을 뗄 수 없도록 하는 힘이 여기에 있다. 지은이 이종문 교수는 현재 매일신문 토요일 '한시(漢詩) 산책' 코너에서 격주로 한시를 소개하고 있다. 118쪽,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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