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친소] 나보다 늙어버린 우리 막내…노령견과 천천히 이별하는 법

입력 2019-07-31 18:00:00 수정 2021-08-13 11:51:19

나이가 들어 걷는 것 보다는 엄마 품에 안기는 걸 좋아하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나이가 들어 걷는 것 보다는 엄마 품에 안기는 걸 좋아하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견종 : 말티즈 / 나이 : 15살 / 성별 : 수컷 / 취미 : 코 골며 자기

듬성듬성 빠진 털에 하얗게 서려버린 두 눈. 안 그래도 많던 잠은 더 많아져 대낮부터 코까지 골며 잔다. 잘 듣지도 잘 보지도 못해 불러도 못 듣기 일쑤. 모처럼 나선 산책길엔 쌕쌕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여기저기 아프다 보니 수시로 병원을 드나든다

언뜻 보면 시부모를 모시는 며느리의 푸념 같기도 늙은 조부모가 어렵다는 손주의 투정 같기도 하다. 대구 수성구에 살고 있는 구자이 씨(57) 집엔 할아버지 한 마리(?)가 산다. 할아버지는 자이 씨 보다 나이가 스무 살은 더 많다. 할아버지는 개다. 그것도 아주 늙은 개. 자이 씨 반려견 동이는 개 나이 열다섯. 사람으로 치자면 일흔은 훌쩍 넘은 나이다.

나이가 들며 잠이 많아진 탓에 대낮부터 코 골며 자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나이가 들며 잠이 많아진 탓에 대낮부터 코 골며 자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동이의 하루일과는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동이의 하루일과는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반려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2005년 초가을 자이 씨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말티즈를 만났다. 피부병이 있는 녀석은 주인도 없이 병원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텐데, '나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 까만 눈동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수시로 약을 바르고, 사랑으로 메 만져 주다 보니 꼬질꼬질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가족 많은 집에서 사랑 듬뿍 받고 자란 막내아들의 모습만 남았다.

"나보다 작고 어렸던 녀석이 눈 깜짝할 사이 나보다 늙어버렸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추억을 쌓았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보다 5~6배 빠르게 흘러간다. 막내아들이었던 동이는 어느새 집안에서 가장 연장자가 됐다. 나이가 들면서 전에 없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간식을 타내는 새로운 전술, 먹을 게 없으면 불러도 잘 오지 않는 꼼수.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 나이 일흔 동이에겐 몇 분 안되는 산책도 힘이 든다. 독자 구자이 씨 제공
사람 나이 일흔 동이에겐 몇 분 안되는 산책도 힘이 든다.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몸이 약해지고 아프더라도 늘 반려인을 반기는 동이다.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몸이 약해지고 아프더라도 늘 반려인을 반기는 동이다.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노령견을 위한 생활&건강 관리

나이 든 동이는 더 이상 산책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 풀 냄새를 맡는 것도, 목줄을 잡아당기며 앞장서는 것도 동이에게 아주 힘든 일이 됐다. 축 늘어진 채 잠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5분만 걸어도 혀를 길게 쑥 내밀고 헥헥 거린다. 청력도 예전만 못하다. 엄마 아빠 차 소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동이였다. 차 문 잠그는 소리가 들리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 벌떡 일어나 왈왈 짖곤 했다. 자칭 타칭 '소머즈'였던 동이는 이젠 문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을 때까지도 쿨쿨 잠만 잔다. 살금살금 걸어와 털을 살짝 잡아당기면 그제서야 벌떡 일어나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자이 씨는 그런 동이를 위해 일주일에 두어 번 건강식을 준비한다. 북어를 압력솥에 푹 과서 북어대가리를 완전히 빻아 가시도 다 발라내고 그렇게 정성 들여 먹이고 있다. 관절이 안 좋아 자주 미끄러지는 동이를 위해 자이 씨 집에는 구석구석까지 매트가 깔려있다. 반려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질병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노령견에게 정기적인 건강 검진은 매우 중요하다. 또 노령견은 관절이 약해진 만큼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고 문턱을 없애는 것이 좋다.

엄마가 사준 새 옷을 입고 오랜만에 기분을 내 보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엄마가 사준 새 옷을 입고 오랜만에 기분을 내 보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바뀌어 가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바뀌어 가는 동이. 독자 구자이 씨 제공

◆반려견을 통해 배우는 노화·죽음

"우리를 기다리는 자리, 밥 먹는 자리, 잠 자는 자리. 집 곳곳은 동이와의 추억으로 가득하다. 동이와의 이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눈물난다". 이별이 슬픈 이유는 끄집어 내지 않아도 자기 멋대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함께 쌓아온 추억 때문이 아닐까. 몇 년 만난 남자친구와의 이별도 눈물나게 아픈데, 하물며 이십년 가까이 함께했던 반려견과의 헤어짐은 어떠할까. 더욱이 그 존재가 아무 조건없이 있는 그대로 당신을 사랑해주었다면 말이다.

"침 좀 흘리고, 코 좀 많이 골면 어때? 늙어서 그런거지 뭐. " 잠도 많이 자고, 털도 희박해지고, 숨소리도 거칠어진 동이를 보며 자이 씨는 몇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자주 한다. 반려견이 나이 먹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네 삶의 축소판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분명히 맞이하게 될 그날은 온다. 내 강아지가 늙어버렸다고 슬퍼하지 마라. 네 발 달린 이 어여쁜 스승 덕분에 앞으로 겪게 될 '노화',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박스〉 반려견의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STEP 1 질병 걸린 반려견 돌보기
노령견을 키우는 보호자에게 가장 힘든 점은 말년에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반려견을 보는 것이다. 반려견이 치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면 진통제 처치를 해주는 것이 좋다. 진통제로도 통증을 완화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심각한 노령견의 편안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도 고려해볼 수 있다.

STEP 2 마지막 가는길 함께하기
생을 마감한 반려견을 끝까지 잘 보내주는 것 또한 보호자의 몫이다. 현행법상 반려견의 사체는 생활폐기물로 간주해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게 돼 있다. 보호자가 원한다면 동물장묘업체가 운영하는 화장시설에서 화장을 할 수도 있다. 화장은 동물병원을 통한 단체화장, 동물장묘업체를 통한 개인화장 으로 나눠 진다.

STEP 3 펫로스 증후군 극복하기
가족과 같은 반려동물의 죽음을 의연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후유증을 겪지 않기 위해선 노령견이 죽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더불어 헤어짐의 슬픔보다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과 행복을 준 반려견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며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 보호자에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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