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에서 '호텔 델루나'까지 ‘왕좌의 게임’의 그림자
미국드라마 HBO '왕좌의 게임'은 지난 5월 시즌8로 대미를 장식했다. 미국드라마지만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에도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도대체 '왕좌의 게임'의 무엇이 이런 영향력을 발휘하게 한 걸까.

◆에미상 최다 후보를 낸 '왕좌의 게임'의 저력
2019년 에미상에서 HBO '왕좌의 게임'은 역대 최다 부문 후보로 지명되는 신기록을 만들었다. 지난 16일 CBS 방송에 따르면 '왕좌의 게임'은 에미상 후보작 리스트에서 베스트 드라마 시리즈 부문을 포함해 총 32개 부분에 등재됐다고 한다. 이 기록은 지난 1994년 ABC에서 방영됐던 '뉴욕경찰 24시(NYPD 블루)'가 세웠던 18개 부문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다. 마지막 시즌8까지 총 73편이 제작된 이 드라마는 전 세계 170여개국에서 방송되며 말 그대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렸다. 마지막 시즌은 미국에서만 한 편당 평균 430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고, 제작비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마지막 시즌 한 편당 제작비는 무려 1천500만 달러(약179억 원)에 달했다. 올해도 에미상 후보작에 대거 리스트되었지만, 이 드라마는 이미 에미상에서만 총 4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올해의 결과가 더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워낙 글로벌한 인기를 누린 작품이어서인지, '왕좌의 게임'은 미국드라마지만 우리네 대중들도 열광한 드라마였다. 마지막 시즌의 경우 그 엔딩을 두고 꽤 시끌시끌한 논쟁이 붙었을 정도였다. 2011년 4월 시즌1을 시작해 지난 2019년 5월19일 시즌8로 대장정을 마무리한 이 드라마가 이토록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
'왕좌의 게임'은 용이 날고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류의 판타지 장르지만, 훨씬 더 현실성을 가미했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 결을 갖고 있다. 즉 뒤편으로 갈수록 판타지의 영상들은 점점 전면에 등장해 화려해지지만, 그 과정은 철왕좌(Iron throne)에 앉기 위한 칠왕국의 치열한 전쟁과 암투로 채워졌다. 그만큼 이 판타지의 세계가 마치 진짜 존재하는 것 같은 리얼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뒤로 갈수록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판타지들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산자들의 전쟁이 아니라, 산자와 죽은 자들의 전쟁으로 구도가 바뀐다.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원작에서 느낄 수 있듯이, 후반부 판타지는 얼음의 세계에서 되살아난 죽은 자들의 군대와 그들에게 불을 뿜어 녹여버리는 용을 위시한 산 자들의 군대가 맞붙는 이야기. 모두를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 적이 등장하자 왕좌를 두고 싸우던 산 자들이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뭉치게 되는 '왕좌의 게임'의 국면전환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것은 일종의 냉소적인 허무주의가 주는 공평한 위로다. 즉 '누구나 죽는다'는 그 전제 하에 들끓는 욕망들이 누군가는 영웅을 만들고 누군가는 허무하게 죽어가지만 결국은 다 같은 운명이라는 위로를 준다는 것.

◆'왕좌의 게임'이 우리네 드라마에 미친 영향
물론 그런 위로는 보기에 따라서는 논쟁적인 결말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애초에 추구하려 했던 그 거대한 세계관을 완성시킨 이 작품은 글로벌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 여파는 우리네 드라마에서도 발견된다. 가상의 판타지물이지만 그것이 과거의 어떤 연대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건 사극이었다. 2015년 방영됐던 김이영 작가의 '화정'은 광해군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기존의 사극들과 달리 선악구도를 나누기 보다는 왕좌를 향한 '욕망하는 인물들'을 세운 바 있다. 물론 김이영 작가가 '왕좌의 게임'의 영향으로 이 작품의 색깔을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그 영향은 있었다고 보인다. 김이영 작가의 최근작인 '해치'의 경우도 이러한 '욕망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왕좌의 게임'이 자꾸만 거론되는 드라마는 tvN '아스달 연대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사극이 좀체 건드리지 않았던 상고시대의 이야기를 판타지로 엮은 '아스달 연대기'는 그 의상에서부터 '왕좌의 게임'과 비교되었다. 물론 '아스달 연대기'의 이야기는 '왕좌의 게임'이 가진 북구신화적인 판타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스달 연대기'는 좀 더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왕좌의 게임'을 거론하게 만드는 건 그 글로벌한 야심에서 비롯된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500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우리네 사극의 역사를 벗어나 상고시대가 갖는 전 세계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공간을 가져왔다는 점이 그렇다. 아마도 '왕좌의 게임' 같은 글로벌 드라마의 성공을 보면서, 우리네 드라마가 우물 안에만 있어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래서 그 완성도는 차치하고라도 그 시도만큼은 분명 이해되는 면이 있다.
이렇게 드라마 자체가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는 경우 이외에도, 많은 사극 신들이 '왕좌의 게임'의 전투 신을 연상시키는 것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도깨비가 되는 김신(공유)이 적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말을 타고 달려드는 적들 앞에 홀로 칼을 들고 마주서는 이 장면을 비교해 분석해놓은 한 네티즌의 글을 보면 그 유사성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또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호텔 델루나'에 등장하는 나무의 이미지도 어딘지 '왕좌의 게임'에 철왕좌와 대비되는 상징으로 나오는 나무가 떠오르는 건 '왕좌의 게임'이 가진 그림자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 게다.

◆우리가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여러모로 '왕좌의 게임'은 이제 드라마가 국가를 뛰어넘어 글로벌하게 소비되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국적성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경계를 넘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현지화'의 이름으로 우리네 드라마에 투자하면서 생겨난 변화이기도 하다. 결국 드라마는 제작비와 무관할 수 없다. 그 제작비가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들어온다면, 작품 또한 그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게다.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네 드라마가 그런 규모의 작품을 감당할 만큼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식 '왕좌의 게임' 같은 느낌을 주는 '아스달 연대기' 같은 야심찬 시도는 그래서 그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이미 글로벌하게 열린 시장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로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개항되고 있는 시대에 쇄국을 외치는 역사적 실패를 반복할 수 있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에 글로벌한 보편성을 더하려는 노력을 계속 시도할 때만이 우리네 드라마의 생존이 보장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시련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게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말에 담긴 위기와 기회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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