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무역 전쟁 도발한 일본에
자신있는 태도로 대응해 나가되
현 사태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를
친일·적폐 관점에서 취급 말아야
최근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관한 일본의 불만이 무역규제로 비화되고 일파만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징용 판결은 나름의 법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 반면 향후 어떻게 일본 기업을 상대로 실효적인 집행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냐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일본 법원에서 청구가 기각된 선례가 있고, 대한민국 판결로서 일본 내 집행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판결은 자연인으로서의 개별 징용 피해자를 대상으로 정의가 무엇인지, 가해자의 책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선언해 준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징용 피해자 개인과 징용 기업 간의 판결 결과가 심각한 무역 갈등으로 번졌다. 정부가 나서서 강제합병에 따른 배상책임을 국가 간에 청구권 협정으로 타결한 후에도 피해 개개인의 권리는 그와 별도라는 취지에서 배상소송이 진행될 수 있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전범 기업의 민사적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나서서 수출규제 등의 사실상 무역 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과거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조건은 강제합병 기간 동안 일제가 수탈한 군사적, 경제적 이득, 그 밖의 각종 무형적 이익에는 절대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로 근대화의 기회를 나름 얻었지 않았느냐는 견해는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과거 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은 별도로 인정돼야 한다는 법원 판단은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와 곧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 등 일련의 대응은 옹졸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무역규제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입게 될 피해와 타격을 고려하지도 않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공동의 기업 출연금으로 배상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크게 한발 물러선 제안도 물리쳤다. 치킨게임도 불사할 듯 보이며, 멱살잡이도 이만한 게 없다. 최근의 무역 전쟁은 결과적으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이미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맞서 구조조정 대책을 세우고 인내하며 힘을 기르고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당장은 많은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새로운 수입 활로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해 나갈 것을 확신한다. 심지어 일각에선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기술을 개발, 검증해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긍정적 시선마저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목소리로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정부는 WTO 협정 위반 등 국제법 위반 이슈를 제기하며 규제 위법성을 설득하고 있다. 이 기회에 정부나 기업은 자신 있는 태도로 수출규제에 대응해 나가되 자칫 '눈에는 눈' 식의 강경한 자충수는 두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전 세계 경제와 무역이 복잡계로 얽히고 상호작용하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자연스레 일본 자국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작게는 당장 코앞에 다가온 내년 도쿄 올림픽의 흥행과 성공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다.
요컨대 정부와 기업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동요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우리나라 경제의 힘을 믿으며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용기와 지혜를 동시에 발휘해야 한다. 국민들은 불매운동 대상과 일본 브랜드를 활용하는 국내 기업인의 독자적인 경제 활동을 구분하는 현명함도 갖춰야 하며, 전략물자 관리를 운운하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명분 시비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반면 현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다양한 시선이나 견해를 친일 청산이나 적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당면한 무역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싸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과제를 안긴 것이 아니라 싸움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의연함이 요구된다 하겠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 아니던가? 부디 금번 한일 갈등 사태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지고, 역사 속 올바른 정의는 살아남아 대물림되는 전환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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