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 <32> 여름철, 더위와 일에 지친 농부 보양식…추어탕

입력 2019-07-22 18:00:00

추어탕으로 유명한 상주식당
추어탕으로 유명한 상주식당

동성로 2가, 옛 한일극장 동쪽 골목 안에 소문난 추어탕집이 있다. 1950년대 초반, 상주가 고향인 천대겸 할머니가 가게를 열었다. 처음에는 봉산동 학사주점 입구에서 막걸리․청포묵․돼지고기를 팔았으나 1960년부터 추어탕으로 바꾸었다. 그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영업을 해 오다가, 1993년 세상을 뜨자 딸인 차상남이 물려받았다.

이 집은 대구의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맛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대문을 들어서면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오래된 한옥이 아늑한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문간에 신선한 배추가 차곡차곡 쌓여 있고, 마당을 거쳐 대청마루로 올라서면 이쪽저쪽에 방이 있다. 자리에 앉으면 곧장 음식상이 차려지는데, 추어탕 한 가지뿐이라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간편하다. 오다가다 들려서 한 그릇 먹고 갈 수 있어서 좋다.

뚝배기에 담은 추어탕 한 그릇과 밥 한 공기가 상차림의 전부이다. 미꾸라지를 삶아서 으깬 뒤 채로 걸러낸 진국에다 사골로 우려낸 국물에 배추를 넣고 끓인다. 기름진 자연산 논 미꾸라지만을 고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 간장만으로 간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곱창을 넣고 끓였으나 광우병 파동이 일어난 뒤부터 넣지 않는다. 또한 반찬으로 양념김치와 백김치가 나오는데, 배추를 소금에 싱겁게 절인 백김치가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기호에 따라서 초피가루며 풋고추며 마늘 다진 것을 넣어서 먹는다.

추어탕은 오래된 우리네 토속음식이다. 문헌에는 고려 말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처음 등장하지만, 미꾸라지는 논이나 강에 흔하므로 그 이전부터 민서들이 먹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추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논에 물을 빼고 둘레에 도랑을 판다. 이를 두고 '도구 친다'고 하는데, 이때 진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려고 논바닥으로 파고 들어간 살찐 미꾸라지를 손쉽게 잡을 수 있다. 그것으로 국을 끓여서 동네잔치를 열었으며, 마을 어른들께 감사의 뜻으로 대접하였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미꾸라지는 보양식 또는 강장식으로 즐겨 먹었다. 예부터 여름철 더위와 일에 지친 농촌 사람들에게는 요긴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 가운데 필수 아미노산이 절반 정도가 되고, 성장기 어린이나 노인에게 아주 중요한 라이신도 풍부하다. 그와 함께 무기질과 비타민, 그리고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아서 동맥경화증․고혈압․당뇨병 같은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밝혀졌다.

동성로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이 집은 소문난 맛집이다. 고인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구를 지나칠 때면 거르지 않고 들렸다는 일화가 있는가 하면, 지금도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나 문화 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일체의 술을 팔지 않을 뿐더러 신선한 배추가 나지 않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말까지는 가게 문을 닫아걸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주인은 늘 웃는 얼굴이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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