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고등학교 선배들이 만든 학급지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같은 학교 후배들에게 전해져 흥미를 끌고 있다. 자신의 할아버지뻘 되는 선배들의 일상과 생각을 엿본 학생들은 관심과 함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학급지는 1963년 당시 대구 영남고등학교 2학년 2반 학생들이 학기 말을 맞아 발간한 것. 당시 편집과 프린트를 맡았던 홍순두(72) 씨가 최근 집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다. 부처가 처음 설법한 곳이라는 '녹야원'이란 타이틀의 학급지 안에는 57년 전 영남고 학생들이 직접 지은 시와 수필, 친구들에 대한 앙케트 조사 등으로 채워졌다.
학급지에는 '평등'을 주제로 한 수필, 이상화 시인의 생애와 작품, 항일운동 등에 대한 글이 실렸다. 외부 기고도 눈에 띄었는데 지난해 선종한 시인 이정우(알베르토) 신부는 경북고 2학년 대표로 수필 '월요일 아침'을 실었다.
천진난만한 남고생들의 익살스러움도 보였다. 앙케트 조사에서 '2반에서 생활하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이라는 질문에 '교실 청소 당번 때 트위스트를 추다가 학생과장 선생님께 들켜서 교무실 앞에서 강제로 트위스트를 출 때'라는 답도 있었다.

다른 학교와 교류가 많았던 타 학교생들의 눈의 비친 영남고 학생은 주로 열정적이고 육체미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대구 계성고 학생들은 "여학생이 등장하기만 하면 휘파람 아닌 괴상한 소리를 내는 것만 남용하지 않는다면야 영남고생의 운치는 더할 나위 없다"고 적었다.
57년 전 학급지를 받아든 현재 영남고 독서 동아리 '태을성' 학생들은 "여학생에게 비치는 영남고 학생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해 주위를 폭소하게 했다.
정승호(17) 군은 "지금 70대 할아버지들을 생각해보면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데, 글을 읽어 보니 요즘 1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놀라웠다"고 했다.
정준열(17) 군도 "평등과 이상화 시인, 항일에 대한 글이 인상 깊었다"며 "요즘도 한일 관계, 사회적으로는 양성평등이 주요 이슈로 부각된다. 60여 년 전 고등학생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당시 대구여고 문예부 학생으로 영남고 학생들과 교류하며 녹야원에 글을 실었던 박기옥(72) 수필가는 "똑같은 머리, 교복 등 외형만 보면 획일적이었을 것만 같지만 사실 그 시절 학생들은 정말 다양한 개성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사는 모습은 훨씬 좋아졌지만 뜻밖에 요즘 아이들이 참 안쓰러울 때도 많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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