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④

입력 2019-07-22 18:00:0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순번 상 빠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서 중위는 작전에 나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지난번 오작교 작전을 할 때도 서 중위는 워낙 그곳 지리에 익숙해 있어서 앞장을 섰었다. 신임 중대장을 도울 입장으로 맨 앞장서서 공격을 했던 것인데 또 작전을 나가게 된다는 것은 좀 무리한 것이라 생각되어 은근히 화를 삭이기도 했었다.

20시경 호수의 동쪽 지역에서부터 먼저 적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서 중위 소대 쪽에서 보면 호수 건너에 있는 5중대가 적으로부터 처음 공격을 받았던 것은 박격포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공교롭게도 미 해병대로부터 지원 나온 탱크 옆에 떨어져 그래도 대원 2명이 경상을 입었을 정도로 끝이 났다.

그러나 5중대에서 응사하는 총알과 케리 시 30 경기관총의 예광탄들과 총알들은 고스란히 약간 마주 본 듯한 우리 7중대의 전면으로 날라 오고 있었다. 서 중위는 혹시라도 자신들의 위치가 탄로 날지도 몰라 소대장들에게 모두 참호 속에 머리를 박고 일체 응사를 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했다.

총소리는 불과 5분도 채 안 되어 멎었다. 서 중위는 중대장과 함께 불빛이 새지 않게 손을 가려가며 연신 줄 담배를 피워댔다. "틀림없이 또 이곳저곳을 집적여 볼 것 같네요. 이놈들이 나갈 구멍을 찾느라 노크를 해 보는 거나 마찬가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대장을 안심시키느라 서 중위는 되도록 자신 있게 말을 했다.

"그리고 소대장들에게 당부를 했습니다만 적들이 바싹 우리 앞으로 다가오기 전에는 사격은 물론 절대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중대장은 담배를 입에 물은 채 서 중위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가벼운 웃음을 지워 보였다.

"따다 다다다 다당.."

귀가 따갑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5중대의 남쪽 지역인 6중대 쪽에서 먼저 총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다음은 3대대가 막고 있는 곳으로 부터도 총알이 나르고 "꽝~"하는 포탄이 터지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 이놈들이 또 도주로를 찾느라 분산 공격을 해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쪽이 조용하면 차츰 모여 이곳으로 오겠지요."

"오려면 빨리 와라! 음..."

중대장은 소리를 낮추며 또다시 입을 쫑긋해 보였다.

몇 분 후에는 또다시 총소리가 멎고 적막 같은 시간이 다시 흘렀다.

중대장과 서 중위가 주저앉아 있는 곳은 수려한 숲속에 매우 큰 정원을 가진 별장 같은 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의 영화도 간 곳 없이 잔해만이 쌓인 폐허 위에 낯선 이방의 객들만이 모여 지루한 게릴라전의 개전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서 중위가 처음 신참 소대장으로 소대원들을 이끌고 야간 매복을 나갔을 때다. 떠 있는 둥근 달을 쳐다볼 때마다 지금쯤 한국에서도 전쟁터로 자식을 보낸 수많은 부모들이 저 달을 같이 쳐다보며 자식들의 무사 귀향을 빌고 있겠지"하는 생각을 자주 해 본 적이 있다.

또 어떤 때는 자신이 전생에 그렇게도 죄를 많이 지었던가? 하는 자학적인 생각을 해 보기도 하고 여자들과 술도 마시며 시간을 즐기던 한때를, 친구들을 떠 올려 보기도 했었다. 절실한 소외감에 한탄스러움까지 느낄 때가 있었는가 하면 앞으로는 "국가적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은 절대로 기필코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해 보며 계속 모기에게 뜯기는 길고도 먼 밤을 지새운 때가 많다. 남국의 그날 밤은 검은 구름이 끼었고 달은 가려져 모습이 귀했다. 그 속에서 그믐달은 낯선 모습으로 신음을 뱉고 있었다.

그토록 지루하던 시간도 이제 새벽 3시가 가까워졌다.

중대장도 서 중위도 실망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중대장님, 이제 눈을 좀 붙이시지요."

서 중위는 그 자리에 조금 더 있기로 하고 중대장은 약간 떨어져 있던 통신병과 함께 미리 전령이 준비해 놓은 좀 더 낮고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던졌다.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서 중위도 잠시 눈을 좀 붙이지그래"

서 중위는 오감이 모두 곤두서는 밤이 아닌데도 지난 3월경 2대대 3중대 6소대 대원들이 대낮에 정찰을 나가다 대대본부가 불과 300미터 정도 거리밖에 안 되는 전방 도로에서 기습을 받아 거의 1개 분대 가량의 대원들이 적에게 확인사살까지 당했다는 치욕적인 일을 떠 올렸다. 정신이 번쩍 든다.

전쟁이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어떤 경우 한 치의 오류도 잠시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전쟁이고 보면 지금의 이 순간에도 너무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서 중위는 잠시 하면서다. 혹시라도 우리 후미를 적들의 구원 병력이 불시에 치고 들어오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에 통신병을 불러 다시 한 번 후미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도록 했다.

병력을 다소 적게 배치한 후미지만 아직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받은 후 서 중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꽝, 꽝, 꽝, 따다 다다다 다다다 다당..."

즉시 깨어 계속해서 폭음과 총을 난사하는 소리는 고막을 구멍 나게 할 것 같다. 놀란 서 중위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즉시 10 미터 아래쪽에 자리를 향해 집중 사격을 같이 퍼부었다. 분명 폭음과 집중사격의 총소리가 중앙의 2소대 매복 지점으로부터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 걸려도 걸렸구나 싶은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중대 전체가 이미 전투 상황에 돌입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기에 매우 흥분이 되었다.

중대장은 이미 상황이 일어난 2소대장으로부터 아마 이동하던 적일 것 같다는 간단한 보고만 듣고 즉시 1소대장과 3소대장에게 각각 자기 전방의 경계를 철저히 하고 적이 확인되기까지는 절대로 사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계속되었던 집중사격 총소리도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끝이 났다.

2소대의 김 소위는 경험이 많은 고참 소대장이라 이미 소대 전방에다 인계철선으로 조명탄을 설치해 놓고 그 조명탄 위에는 수류탄을 장치해 놓았던 것이다. 일단 적이 인계철선을 건드려 조명탄이 터지면 누구나 밝은 빛에 놀라 몸을 엎드리게 되는데 이 순간 신호탄 위의 수류탄은 벌써 열을 받아 자연히 폭발을 하게 된다.

이때 대원들은 놓치지 않고 수백 개의 파편이 작열하는 크레모어 스위치도 누르는 동시에 일제 사격을 가하게 되므로 여기에 걸리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 건 물론 시신마저 분간하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중대장과 서 중위는 이미 상황이 끝났다고 보았지만 너무 앞이 캄캄하고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적들인지 재수 없게 돌아다니는 동물들인지는 아직은 장담하기 이르다고 생각했다. 2 소대장의 보고로는 십중팔구 적들일 것이라는 말을 했지만 날이 밝기 전에는 확인이 안 되니 절대 다가가서 확인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서 중위와 중대장은 경쟁하듯 줄 담배를 피웠다. 날이 밝으면서 대원들은 일제히 접근해 사살된 적들을 확인하고 무기를 수습했다. 우린 해 냈고 살았다. 이렇게 전과를 올린 일도 새삼 생각이 나지만 나중엔 치른 또 한 번의 작전, 쑤이까이 전투는 더 기억이 생생하다.

(7월30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5회가 게재됩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