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들여다보기] 북한의 변화, 우리의 변화

입력 2019-07-03 18:00:00

허영철 공감씨즈대표
허영철 공감씨즈대표

북한 인구는 남한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북한 면적은 남한보다 더 넓다.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은 2019년 3월 말 통일부 집계 기준으로 3만2천495명이며 이 중 84%인 2만7천678명이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출신이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 지원을 위한 상담을 해보면 북한 지역사회에서도 평양의 대학들을 가기 위한 과외가 이미 20년 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북한은 독재 정권이고 출신 성분이 중요한 영향을 받는 차별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완벽하게 통제되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주민들의 숨통을 틀어막는 사회란 인류 사회에서 유지되기 어렵다. 막힌 물꼬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열리게 마련인 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북한 관련 단체들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고등중학생(한국의 중고등학교가 통합된 교육제도)들은 우리의 수험생처럼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기를 쓴다. 물론 북한의 고등중학생들의 대학 진학은 본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집안의 출신 성분과 당원 여부 등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북한의 대학입학제도에서 재수를 통한 입학은 불가능하다. 대신 다른 형태로 고등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군대에 입대해 8~10년을 복무한 뒤 제대하고 입학하는 늦깎이 대학생들이 북한 대학생 중 다수를 차지한다.

북한에서도 자녀가 김일성종합대학에 합격하는 것은 남한에서 서울대에 합격하는 것만큼 온 집안의 경사다. 마을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결국 과외를 시켜서라도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당초 북한이탈주민 지원 활동을 시작할 때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그중 가장 궁금했던 건 1989년 방북한 임수경 전 국회의원에 대해 과연 북한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북한이탈주민 지원 활동을 통해 친해진 몇몇 탈북자들의 얘기는 한결같았다. '당시 임수경의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북한보다 못사는 거지들의 나라라고 배운 남조선에서 온 대학생이 너무 세련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임수경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는 북한 전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대중 강연 연사로 다녔다. 당시 북한에서의 특강 장소마다 남한의 불쌍한 아이들에게 주라고 사탕과 과자를 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임수경 전 국회의원이 "남한 아이들도 이런 거 다 먹고 있다"고 답을 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은연중에 '우리가 사실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지금 세계는 점점 더 정보 통제가 불가능한 시대로 향하고 있으며, 이미 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북한의 휴대폰, 택시, 개성공단 등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아주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북한 방문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임수경 전 국회의원의 방북이 북한 사회가 남한 사회로부터 받은 첫 충격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만남으로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의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접촉과 교류를 통해서만 변화를 받아들이고 발전해간다.

나는 북한의 지도자와 권력층도 더 이상 개혁과 개방의 물길을 되돌릴 수 없다고 자신들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그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경직된 사고도 차츰 변화해 가기를 소망한다.

허영철 공감씨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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