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인터뷰]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교수에게 묻다…혼돈의 나라에서 빠져나올 길은?

입력 2019-07-05 06:30:00

"나만 옳다"는 도덕적 선민 의식 버리고 포용의 길로 나아가야

이무성 객원기자
이무성 객원기자

대통령이 탄핵·파면되고 '가장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스스로 부르짖은 정부가 태어났다. 이 정부가 들어온다면 새로운 세상이 나타날 것 같았다. '촛불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는 탄핵·파면된 전임 정부를 호되게 꾸짖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되고 있는지를 되묻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있다"는 월급쟁이들의 긴 한숨, "일자리가 없다"는 청년들의 하소연에다, "앞이 캄캄하다"는 산업현장의 비명도 커지는 중이다.

"이게 나라냐"라며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다짐했던 세력이 정권의 주인이 됐건만 "그렇다면 이건 나라냐"라는 물음표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이른바 '동물국회'까지 불사하면서 정부·여당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지만 제대로된 견제 세력이 되고 있는지, 대안 없는 정쟁에만 빠져있는 것이 아닌지, 보수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불안감도 적잖다.

창간 73주년을 맞는 매일신문은 혼돈의 나라, 대한민국의 오늘을 진단하기로 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숙제도 점검해보기로 했다. 길을 짚어준 이는 철학자 이진우(64)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다. 기자는 지난달 말 그의 자택 인근인 경기도 동탄의 한 찻집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 정치 얘기부터 해보자. 대화와 타협은 없고 '전쟁정치'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투쟁의 정치가 일상화됐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는 역사가 연속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식민지시대를 겪으면서 한 번의 단절을 경험했고, 남북분단에 처하면서 또다시 분단시대의 문화와 논리가 만들어졌다. 남북이 냉전시대 체제경쟁을 하면서 대결과 대립을 유발하고 야기했다.

우리는 민주화를 성취했다. 민주주의 국가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데 우리는 이를 이뤘다.

그런데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적 열병을 앓는다. 새 정권이 취임 초기에는 포용하고 대화와 소통을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현실은 대립과 대결이고 지금도 그렇다. 이러한 갈등의 바탕에 분단의 대결구도가 있다. 이 구도의 극복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 해소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힘을 빌어 등장했다. 그러나 이 정부 역시 소통없는 권위주의 체제라는 야당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정치적 전환기였다. 이를 촛불혁명이라고 부른다면 촛불 이전과 이후가 제도와 문화적으로 볼 때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촛불 이전이 권위주의적이고 이념 대립이 심각했다면 촛불 이후는 보다 민주적이고 이념경쟁이 적은 것은 물론, 포용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2년여가 지났지만 갈등은 오히려 커졌고 대립은 악화했다.

왜 이리 된 것일까? 우선 소통의 부재로 볼 수 있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운동권 세력이다. 그들은 도덕적 독선에 빠져있다. 나는 옳고 상대는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빗대면서 도덕적 실패자로 규정한다. 보수 전체가 도덕적 실패자로 취급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태도가 다른 세력에 대해 관용의 여유를 주지 못한다. 촛불을 든 국민들 중에는 진보성향의 국민 뿐만 아니라 중도와 보수 성향의 국민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의 집권 세력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포용을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앞의 물음에 대한 연장선이다. 교수님께서 최근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라는 책을 펴냈다. 아렌트는 나치 전체주의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면서 끊임없이 전체주의와 자유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했던 사람이다. 오늘날의 한국 민주주의 체제가 여전히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에 쉽게 물들 수 있는 연약한 정치 지반을 가졌다고 보는 것인가?

▶아렌트는 좌우 이념 대립을 넘어서 정의사회와 정치적 자유에 대해 탁월한 연구성과를 냈던 독창적 학자다. 냉전 이후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이념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제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세계를 둘러보자. 트럼프의 미국, 아베의 일본 등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되고 있는 지도자들이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라. 형식적 민주주의 하에서 실제적으로는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모습까지 목격하게 된다. 전체주의가 몰락했지만 그 경향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촛불을 거쳤지만 지금 자유민주주의의 수준이 더 신장됐는가? 민주주의가 더 위태로워졌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칼 포퍼는 문명 사회가 언제든지 야만 사회로 퇴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같은 퇴보의 길로 빠지지 않을 해결책으로 다원성과 존중, 관용과 포용을 얘기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나만 옳다"는 세력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맹목적으로 좇는 무리들이 있다. 이러면 민주주의는 퇴보하게 된다. 독재와 권위주의, 전체주의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새로운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로 빠져들을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체제의 공고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식민지를 경험했던 최빈국이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이 바탕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이 있었다. 정책을 관철시키는데 중앙집권체제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는 청와대 주도의 중앙집권적 권력구도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구도를 바꿔야 한다. '청와대 정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총장(그는 계명대 총장을 역임했다)할 때 기억인데 대학 행정을 할 때 뭐든지 총장만 바라본다. 자율적 결정구도가 없다.

전체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정당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정치도 변화한다. 자꾸 대통령에 대해 험담을 하는데 대통령의 품성은 그 시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 우리 사회에서 정치보복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예민한 문제다. 지금의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인가? '정치보복 아닌 정치보복인듯'이라고 애매모호한 표현을 한번 해보겠다.

우리 현대사 100여년을 돌이켜보자. 왕정에서 식민지, 분단, 외세에 의해 수입된 민주주의, 그리고 냉전의 대리전인 6·25전쟁까지. 이 질곡의 역사에서 정말 떳떳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약산 김원봉과 백선엽 장군에 대한 논란도 보라. 약산은 민족적 개념으로 보면 해방전쟁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보를 했다. 백선엽 장군은 일본 군대에 참여했지만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큰 전과를 올렸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에서 흠과 과오가 전혀 없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도 이제 도덕적 토대에 대한 공감성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하에 지금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지수가 전세계적으로 하위권이다. 신뢰도가 매우 낮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조치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청산'이라는 이름 하의 조치는 안된다. 청산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된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운다는 뜻이 청산이다. 그런데 민주사회에서 지우개로 확 지운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용서와 화해, 타협이 실종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포용국가를 강조하는데 정치에서부터 포용이 이뤄져야 한다. 포용은 원래 정치의 영역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적폐를 몰아내자는 일련의 조치는 단기간에 끝내야 한다. 장기화하면 보복이 된다. 마키아밸리는 냉혹한 조치는 짧아야 한다고 했다. 너무 길면 보복이 될 수밖에 없다.

- 이 정부는 남북관계에 대해 대단한 정열을 쏟고 있다. 분단을 겪었던 독일에서 오래 공부하셨는데 북한이 변할 것으로 보나?

▶북한은 족벌 체제이다보니 체제 안정이 최대 목표다. 족벌 체제의 연장, 그리고 이를 위한 체제 안정이 목적인 나라가 쉽게 변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체제보장을 해준다면 비핵화를 할 것이라며 선 제재 해재, 후 핵 폐기를 얘기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선 핵폐기, 후 체제보장이다. 결국 상호불신이 쌓이고 있다. 북한의 핵은 체제유지의 보검이다. 북한이 핵을 쉽게 버릴 것이라는 예측은 낭만적 생각이요, 환상일 뿐이다.

- 계명대 총장도 지냈는데 요즘 동탄에 살면서 수도권 집중이 얼마만큼 심화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고 있지 않나? 전 국토가 고르게, 균형있게 발전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요즘 수도권 집중이 상상 외로 심하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나면 한양으로 보낸다'는 옛말도 있듯이 우리나라의 중앙집중 문화는 수백년이 됐다.

더욱이 예전엔 국가들끼리 경쟁을 했다면 요즘은 도시들끼리 경쟁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만 봐도 서울이 한국의 중심지, 도쿄가 일본 중심지, 베이징이 중국 중심지, 이런식이다. 서울 집중도가 더 커지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 구도를 뻔히 보면서 대구경북이 손놓고 있을수만은 없다. 나는 교육과 문화, 노동, 이 3가지 키워드를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인재를 말한다. 문화는 인재의 유인 요소, 노동은 일자리를 뜻하며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현장이다.

인재와 관련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말 잘 한 것이 있다면 거점 국립대학의 발전 전략과 그 실천이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경북대의 전자공학과를 집중 지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책이 오늘날까지 지속됐다면 경북대 전자공학과가 미국 MIT 해당 학과와 경쟁하는 학과가 됐을지도 모른다.

포스텍이 세계적 대학이 된 것은 포스텍을 설립한 박태준 회장과 김호길 전 총장이 명망있는 교수들을 모셔온 덕분이다. 대구경북의 대학이 달라져야 하고 최고의 교수들을 모셔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학생이 따라오고 인재가 몰려온다.

-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대학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도 들린다.

▶대학이 중요하다. 대학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이 굉징히 많다. 지방거점대학을 충분히 육성할 수 있다. 정부가 효율적이지도 않고, 일관화되지도 않은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재원을 잘 활용한다면 지방에 제대로된 대학을 키울 수 있고 인재가 몰려올 수 있다.

대통령을 뽑을 때 이런 결단을 해주는 사람에게 표를 줘야 한다. 또 지역의 사학에 대해서는 자율권을 줘야 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책 방향이 문재인 정부 들어 더 나쁜 방향으로 갔다.

- 지방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나는 선택과 집중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농사도 짓는다. 그런데 농사짓다가 새순을 따주지 않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심지어 새순이라 할지라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대구의 예를 들어보자. 하려고 하는 것, 집중해서 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 많지 않나? 선택을 제대로 하고, 선택했다면 정말 집중해야한다.


- 대구경북의 최대 언론사인 매일신문이 지역의 도약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언론 환경이 많이 변했다. 종이신문 보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디지털시대다. 유튜브 등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지역의 현재에 대한 통렬할 비판이 있어야 하고,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화와 산업에 대한 스토리텔링 역할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사람들이 '찌라시'라는 말도 쓰는데 제대로된 언론이라면 이런 수준을 확 뛰어넘어야 한다. 단순 보도를 탈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역의 정론지 역시 새로운 선택과 집중의 길을 가야 한다. 뉴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언론사가 주는 뉴스만 받으려 하지 않는다. 생산적 뉴스 소비자가 되고 있다는 환경을 감안해야한다.

지역민들을 서로 연계해주는 연결의 마법사 역할을 대구경북에서 매일신문이 해야 한다. 지역민들을 연계해 주는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콘텐츠를 더욱 확보해야 한다. 영천이라는, 예천이라는 지명을 검색하면 매일신문 컨텐츠가 제일 위에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글자 그대로 '중심'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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