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한 방송사에서 2주에 걸쳐 방영된 스페셜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예고편을 보면서 다른 삶을 사는 세 사람의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하지만 '요한 씨돌 용현' 은 세 개의 이름으로 너무 다른,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삶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강원도 정선 봉화치 마을의 천진난만한 괴짜 자연인 씨돌이는 땅바닥에 벌렁 누워 벌거벗은 배에 모이를 올려놓고 참새를 부르고, 지렁이와 이야기하고, 겨울 눈길에 고라니 발자국을 지우는 등 동물과 자연을 귀하게 여긴다. 1987년 민주항쟁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던 요한은 민주화 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 모임 '한울삶' 과 함께 투쟁했다.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해 '군 의문사' 진상을 밝혀내기도 했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구조를 돕기도 했다. 요한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 고비마다 나타나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고 내세우며 생색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게 된 것이다.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듣고 보며, 요한과 씨돌을 살다 이젠 용현이란 이름으로 사는 그의 모습을 마주하며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것 마냥 먹먹하고 답답해져 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진심과 정성, 한결같음, 흉내 내지 않는 진실한 삶이 내 가슴 속에 쉽게 식지 않으면서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남아서였을 것이고, 다른 이유로는 저토록 열정을 다 해 살았는데 왜 지금은 아픈 용현 씨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일 것이다. 병상에 있는 용현에게 투쟁에 몸사리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하여 생색내지 않고 시키지도 알아주지도 않을 자연보호를 솔선수범한 이유에 대해 묻자 용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뜻하는 바, 꿈꾸는 바는 많으나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 날. 환경을 탓하고 여건을 탓하며 미루어 오던 일들. 삶을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이 부끄러움은 비교에서 온 것이라기보다 이미 내 속에 있던 것들 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에 마음을 쏟았고 어떤 당연한 일을 실천하며 살고 있나하고 자문하며 답을 찾고자 하지만 잘 찾아지지 않는다. 아기 기저귀가 만드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보고 천기저귀를 겸해 쓰고 일회용 줄이기를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고, 비닐봉투 일절 쓰지 않기, 세제 줄이기 등 내가 실천하고 있는 사소하지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해나감에 있어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먹는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두고두고 용기 내어 나에게 부끄럽지 않는 내가 되기를, 더 많은 당연한 일에 주저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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