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마법에 걸린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입력 2019-06-26 11:56:53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현대문학/2005년.

"응, 대도시로 가겠대. 그 애가 발자크 얘기를 했어."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P252)

발자크와 만난 바느질 소녀는 대도시로 떠난다. 나와 뤄, 바느질 소녀,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와 그의 작품들이 이 책 속에서 웃음과 재미, 씁쓸함, 애잔함을 준다. 작가 '다이 시지에'는 1954년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다. 그는 국비 장학생으로 프랑스로 유학 가서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며 중국 배경의 영화를 다수 발표했다. 자신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나와 뤄는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낙인찍혀 '하늘긴꼬리닭'이 있는 산골 마을로 재교육을 받으러 간 소년들이다. 나는 바로 다이 시지에다.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에 대한 나의 관심이 증폭된 이유다.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문화대혁명 기간에 의사였던 그의 부모가 투옥되고 자신도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되어 1971년부터 3년간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았다. 그 암울했던 시기를 겪은 작가의 체험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나진영 작
나진영 작 '동경'

그는 2000년 첫 장편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Balzac et la Petite Tailleuse Chinoise)'를 프랑스에서 출간하였다. 소설가로서 성공적인 데뷔였다. 그의 두 번째 소설 'D콤플렉스 (Le complex de Di)'가 2003년 페미나상을 수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재출간되었다. 앞서 2000년에 '소설 속으로 사라진 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이었다.

전기도, 시계도 없는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던 소년들에게 한 줄기 빛이 나타난다. 바로 재봉사의 딸 '바느질하는 소녀'이다. 또 다른 빛인 고향 친구 '안경잡이'를 만난다. 안경잡이에게서 발자크의 소설 한 권을 얻는다. 마오 주석의 어록만이 읽을거리로 허용되던 시기였으므로 소설은 단지 한 권의 소설이 아니었다. 이 한 권의 소설은 이 책 전체를 흔들면서 '나'와 뤄, 바느질 소녀의 관계를 만들고, 안경잡이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뤄는 바느질 소녀에게 소설을 읽어주며 서로 사랑하게 된다. '나'는 질투심을 드러내지 않고 바느질 소녀를 끝까지 지켜주며 바라본다. 섭섭함도 느끼지만. 뤄와 바느질 소녀의 사랑은 풋풋함으로 시작해서 뤄의 간절함과 바느질 소녀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커간다. 방앗간 노인이 멍하니 숨어서 지켜보고 들려주는 뤄와 바느질 소녀의 물속에서의 사랑 얘기, 둘만의 세상인 듯 사랑한 후에 책을 읽어주고 듣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소년들은 소설을 아껴 읽으며 다른 세상에 눈뜨고 바느질 소녀는 읽어주는 소설을 들으면서 인간 본성에, 새로운 세계에 눈뜬다. 나는 새삼 소설의 재미에 눈뜬다.

바느질 소녀는 소설 속 여주인공과 도시 생활을 한없이 동경하며 길게 땋아 묶던 머리를 단발머리로 만들고 남성복 스타일의 재킷을 입고 테니스 운동화를 신고 대도시로 떠난다. 새 삶을 살기 위해. 바느질 소녀의 자유롭고 진취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바느질 소녀는 '나'와 뤄의 산골 생활에서 큰 기쁨이었고, 재교육의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보물이었다. '나'와 뤄가 들려주던 소설들은 그녀에게 보물이 되었다.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세대의 책에 대한 동경과 찬사를 담은 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란 책을 만나는 사람을 위한 보물도 찾는 사람의 것이 될 것이다.

나진영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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