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옥 소설가
대구문인협회 편집회의에 가던 중 예술회관 호수 쪽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다. 점심시간이었다. 무료급식을 위해 모여든 노인들이 밥을 받아들고 나무그늘을 찾았다. 여느 맛집에 모여든 손님들처럼 식판을 들고 웅성대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식판을 받아든 분들 중에는 그 밥이 아니면 점심을 굶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혼자 밥 먹는 것이 싫어서 무료급식소를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구의 평균임금이 전국 광역시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손꼽을만한 대기업 하나 없는 도시여서 청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바쁘고 나날이 노년층만 늘어나니 실은 평균이란 말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도시에 터무니없이 집값만 비싸다. 아직도 집이 부족한지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쉬지 않고 짓는 새 아파트가 정말 이 도시가 필요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다른 도시로 출퇴근하는 역외 의존도가 높다는 통계가 홀로서기에 실패한 도시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청년들은 붙잡을 길이 없고, 소득꼴찌의 불명예는 도시의 다른 이름 같고, 사방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이 도시의 인상은 쓰임새가 불확실한 5만원권 지폐 같다.
5만원권이 발행된 지 10년이다. 큰돈은 계좌이체하고, 친인척 경조사에 부조를 하거나 용돈을 줄 때 말고는 대개 1만원권을 많이 쓰는 주부 입장에서는 5만원권이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지금까지 발행된 5만원권이 총 39억3400만여 장이고, 금액으로는 196조7024억 원이라고 한다. 그 중의 절반이 은행으로 돌아오고 절반이 시중에 유통이 된다지만, 지하로 숨은 돈이 70%고 시중에 유통되는 5만원권은 불과 30%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 고액체납자들의 싱크대와 인형 뱃속에서 찾아낸 5만원권이 한 집에서만 5억원이라니, 70%가 지하로 숨었다는 말이 웬만큼 맞는 말 같다. 애초에 5만원권의 발행의도가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괜한 것일까. 싱크대나 인형의 뱃속, 마늘밭에 숨긴 돈다발이 건강한 돈이었으면 그렇게까지 숨바꼭질을 해가며 감추고 빼돌리는 블랙코미디를 시도했을지.
법정스님이 남기신 '무소유'를 잠깐 들여다본다.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치 않은 것을 갖지 않는 뜻이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맑은 삶을 가꿀 수는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고 하신 여운이 짙다. 장정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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