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째 인정받지 못한 한국전쟁 소년병…"존재 잊지 말아달라"

입력 2019-06-24 17:44:36

윤한수 6·25참전소년소녀병전우회 회장 인터뷰

윤한수 소년병전우회 회장이 소년·소녀병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윤한수 소년병전우회 회장이 소년·소녀병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소년병들의 한국전쟁은 69년째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21일 대구 중구 동인동 6·25참전소년소녀병전우회(이하 소년병전우회) 사무실에서 만난 윤한수(86) 소년병전우회 회장은 가쁜 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윤 회장처럼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여한 소년병만 2만9천여명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은 여태 국가로부터 어떠한 공적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1950년 7월 입대 당시 키 157㎝, 몸무게 52㎏에 불과한 중학생이었다.

6·25 참전 소년병에 대한 지원은 그간 꾸준히 논의가 됐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16~19대 국회에서 보상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폐기됐고, 20대 국회에 발의된 '6·25참전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특별법' 또한 계류 중인 것.

한국전쟁은 소년병들의 꿈마저 앗아갔다. 윤 회장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선수, 중학교 때는 사회복지사의 꿈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러나 참혹한 전쟁을 겪은 후의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윤 회장은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소년병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겪고도 아무런 심리치료나 교육 없이 사회로 나와야 했다"면서 "그 아픔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고 했다.

사실 소년병은 학도의용군과 달리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은 군인이었다. 국제법상 만 18세 미만의 전쟁 동원은 금지돼 있으나, 수많은 소년들이 낙동강 전선 방어에 투입됐다.

낙동강 서부전선에 포병 탄약수로 투입된 윤 회장은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는 "수류탄 파편을 맞아 눈 옆이 찢어지는가 하면, 군용 차량이 몸을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며 "국가 차원에서 소년병을 보듬어줘야 하지만 아직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이제는 정말 지친다"고 하소연했다.

소년병전우회 조직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회원 대다수가 80~90대 고령으로, 날이 갈수록 생존자 숫자는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남구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열린 '제22회 순국 소년병 위령제'에서 윤 회장은 "추모사를 하면서 이번이 마지막 해라는 말을 뱉을까 고민하다 속으로만 삼켰다"며 "올 연말에는 전체회원 투표를 통해 활동 지속 여부를 매듭지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인터뷰 내내 국가가 소년병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소년병으로 참전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나라를 위해서라면 또다시 싸우러 나가겠다"며 "부디 국민들이라도 소년병들의 참전 정신을 잊지 말고 기억해 준다면 언젠가는 그 공로를 인정받는 날도 올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소년병전우회 윤한수 회장.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소년병전우회 윤한수 회장.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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