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공부한다고?" 이혜리(29) 씨는 친구들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말씀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맞장구를 쳐 드리면서 예쁨 받는 일이 너무 좋았다. 이 씨는 항상 노인들에게 눈이 갔다. 아르바이트 가게에서 박스를 모아놨다가 폐지를 줍는 노인에게 드리고, 길을 헤매는 노인이 보이면 같이 길을 찾아드렸다.
"성격이 착해 노인을 도와드리는 건 아니고요, 그냥 어릴 때부터 항상 눈이 갔어요. 친구들은 도와주면 당연하다 여기는데 어르신들은 작은 도움에도 너무 고마워하세요." 노인이 너무 좋은 그녀는 지난해부터 실버산업학과에 진학해 노인 공부를 하고 있다. 노인을 '공부'하는 사람도 노인을 가르치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노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나보았다.
◆노인을 위한 노후 생활
"진짜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대구대학교 실버복지상담학과 3학년 이동환(58) 씨는 전직 은행원이다. 사회공헌사업이 많은 직장에서 봉사활동을 자주 나갔는데 현장에서 노인을 만날 기회가 잦았다. 주로 무료급식을 나누거나 독거노인 집에 방문해 생필품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진짜 도움이 필요한 노인에겐 손길이 충분히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형식적인 봉사활동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계속 고민했다. 기업은 물론이고 지자체나 관련 단체가 노인 복지의 일환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실태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세금이 그들을 위해 쓰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 보였다. 사실 이 씨는 오래 전부터 은퇴 후 아내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직장 봉사활동에서 노인을 만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은퇴 후 노인 관련 사업이나 봉사를 하더라도 그 분야의 행정이나 제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학교 진학을 결정했다.
이 씨는 교과과정에 포함된 실습 과정에서 노인 복지사업 집행 과정 전체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특수복지재단에서 120시간 실습을 하면서 노인 복지와 관련한 관리 시스템, 자금신청, 지역자본조달 등 실무를 익힐 수 있었다.
실무를 경험하면서 노인을 위한 예산이나 행정 시스템을 더욱 효율적으로 바꾸고 적용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특히 남성 독거노인들이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는데 이 씨는 학업을 마칠 때까지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계속 연구할 계획이다.
이 씨는 경력을 살려 노인 전문 자금관리 컨설턴트 역할도 하고자 한다. 노인들이 많지 않은 연금이나 용돈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금융과 관련된 범죄 예방 교육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특히 최근에는 보이스 피싱과 같은 금융거래 사기의 표적이 노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당사자들에게 쉽게 설명해주려 한다. "노후란 게 별거 있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성공하는 건데 어르신께 도움 드리며 살면 보람도 있겠지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의 노후를 위한 수업
수년 내 퇴직을 앞둔 김원기(50) 씨에게 불연 듯 노후 준비라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늦은 결혼과 출산 탓도 있었지만 요즘엔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는 추세가 아니라 스스로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을 지켜보는데 제대로 노후 준비를 하지 않으면 내게 닥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병약하거나 일과가 무료한 노인이 되긴 싫었다.
노후준비도 공부를 하면서 체계적으로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현업을 이어가며 공부할 수 있는 인터넷 강의를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 실전에서 공부해보니 준비할 것이 많았다. 노인이 복지를 기대하고 부양받는 시대는 끝났다.
자산관리부터 건강, 복지부터 원만한 가족관계 유지 등 노인 스스로 해야 할 일이었다. 남에게 기대는 노후는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까지 편해지지는 않는다. 김 씨는 더욱 구체적으로 노후 설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씨가 재학 중인 한양사이버대학 실버산업학과에서는 사회복지사나 평생교육사 등 자격증을 취득하는 노인의 복지 외에도 '노인 산업' 관련 수업이 많다. 최근 그는 창업실무과정 수업에서 경험한 현장실습이 스스로의 노후를 준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노인 관련 복지용품을 보급, 운영하는 회사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이 여태껏 직장생활에서의 노하우도 적용할 수 있어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데 자금이 얼마나 드는지, 고객을 어떻게 확보해 어떤 수단으로 연락을 할 것인지 배우고 계획서를 쓰는 수업에서 김 씨는 자신의 미래를 찾았다.
"시니어산업이라고 하면 단순히 복지만 생각하는데 노인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이 산업의 일부가 됩니다. 인구가 주는 반면 늘어난 노인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산업은 크게 팽창해요. 금융 관련업 경력자라면 노인을 상대로 자산관리 상담을 할 수 있고 식품업계 종사자는 노인이 먹는 고영양소 음식 관련해서 일 할 수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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