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이야기] 대기업 광고 만드는 동네 백수

입력 2019-06-19 14:16:51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사진 제공: ㈜빅아이디어연구소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사진 제공: ㈜빅아이디어연구소

"10년 고생한 사람은 10년 버틸 힘을 얻고, 20년 고생한 사람은 20년 버틸 힘을 얻습니다."

그 말이 나를 버티게 했다. 10년 전 필자는 백수였지만 '10년, 20년 버틸 힘을 얻고 있구나'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돌이켜보면 보이지 않기에 두려워했던 거 같다. 미래에 다가올 행복을 우리는 알 수 없으니 현재의 불행에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문장이 있으면 왠지 두렵지 않았다. 그때부터 문장 수집이 시작되었는데 나중에는 필자의 방이 온통 글로 도배가 되었다.

매일 아침 대구 동성로에 있는 2.28 공원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혼자서 광고를 만들었다. 미국 학교처럼 선생님은 안 계셨지만 혼자서 수업을 이어간 것이다. 매일 브랜드를 정해 새로운 광고를 만들었다. 오늘은 애플, 내일은 나이키, 모레는 삼성. 이런 글로벌 기업의 광고를 만들고 회사에 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대기업 광고를 만들 때는 적어도 백수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유학 실패자가 아니었다. 백수 아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하루하루 버텨나갔다. 연필 한 자루, 노트 한 권만 있으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광고에 집착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는지 필자의 광고를 본 기업에서 답장이 왔다.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바로 나이키였다. '당신이 만든 광고를 잘 봤지만, 우리는 이미 계약된 광고 에이전시가 있다. 당신의 앞길에 건승을 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짧은 이메일의 감동은 엄청났다. '세상에! 내가 나이키로부터 답장을 받다니! 그것도 내 광고를 봐줬다니!'

'나는 이미 대기업 광고를 만들고 있구나. 나도 남부럽지 않은 광고인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서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불안할 때마다 힘이 되는 문장을 붙여뒀다. 이 문장의 힘으로 10년 전 백수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사진 제공: 빅아이디어연구소
불안할 때마다 힘이 되는 문장을 붙여뒀다. 이 문장의 힘으로 10년 전 백수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사진 제공: 빅아이디어연구소

나의 현실은 실패한 백수였지만 상황을 반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부정적인 상황 속에 긍정을 끌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나이키에서 온 거절 메일 한 통이 내겐 인생의 반전과도 같았다. 내 광고에 반응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그것이 거절인지 승낙인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대기업의 광고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반전이었다.

'느리게 걷더라도 이렇게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지만 내 삶을 사랑하지 않는 백수는 아니었다. 아침에 눈 떠서 매일 공원으로 출근해서 온종일 광고 만들고 밤이 되어서야 혼자 하는 수업이 끝났으니 충분히 나를 사랑하는 삶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10년 전 필자만큼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업하는 이들은 IMF 이후 체감 경기가 가장 얼어붙어 있다고 한다. 직장인들에겐 월급날은 급여가 잠시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날에 불과하다. 너도 나도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 불경기를 우리는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말과 글의 힘을 믿어보자. 긍정적인 말을 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자. 그렇게 마음을 토해내자. 가슴이 뻥 뚫리는 것은 물론이요, 언젠가 유능한 카피라이터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과 글은 엄청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사진 제공: pixabay
말과 글은 엄청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사진 제공: pixabay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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