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1936년 시집온 새색시

입력 2019-06-21 18:00:00

수줍어 고개만 숙이고 있던 새색시
백수 맞은 어머님의 기억과 기록

1936년 안동 남후면 수하리 가정집에서 찍은 가족사진. 새댁(왼쪽)의 시선처리가 눈길을 끈다.
1936년 안동 남후면 수하리 가정집에서 찍은 가족사진. 새댁(왼쪽)의 시선처리가 눈길을 끈다.

사진은 기록이다. 기억이다. 기록으로 기억을 보정한다. 그땐 그랬다고 아무리 이야기한들 사진에서 다른 모습이 나오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일기도 그렇다. 한 줄이라도 다른 얘기가 적혀 있으면 기억이 수정된다. 기록의 힘이다.

서정륭(80) 씨가 열어준 타임캡슐이다. 1936년이다. 안동 남후면 수하리, 무주무라 불리는 동네 시골집 마당에서 3대 일가족이 찍은 사진이다. 1939년생인 서정륭 씨가 태어나기 전이다. 우리 나이로 100세, 백수를 맞은 서 씨의 어머니(사진 아래에서 왼쪽)가 가장 눈길을 끈다.

1920년생으로 우리 나이 17세에 시집온 새댁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손에 한삼(汗衫)을 두른 그녀가 사진 촬영에 미숙해 타이밍을 놓쳤던 게 아니다. 가족사진을 찍는데도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든 것이다. 뭐가 부끄럽나 싶지만 근 100년 전에는 그게 여성성이었다. 외출할 때 손을 가리기 위한 한삼이 쓰였을 때다. 결혼해 아이도 낳을 나이였지만 한편으론 세상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 부끄러운 나이이기도 했다.

1936년 사진치고는 우수한 화질이다. 새 식구가 생겼으니 사진 한 번 찍자 해서 찍을 수 있던 시대는 아니었다. 안동에서 사진관을 열었던 백부 덕분에 남은 사진이었다. 갓을 쓴 시아버지, 시어머니, 아주버니, 어린 시동생, 시누이에 조카까지 뒤섞였다. 갓을 쓴 시아버지만 빼면 항렬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모나 삼촌과 학교 동기인, 심지어 어린 이모나 삼촌을 둔 이들이 1970년대까지는 더러 있었다. 나이순으로 엄격한 항렬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던 건 비교적 최근이다. 늦춰진 결혼 연령과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가족 계획의 공이 컸다. 어린 이모나 삼촌을 찾기 어려운 21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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