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진(30) 씨는 경력 20년차 베테랑 마술사이다. 대한민국 3세대 마술사이자 천극변검(얼굴 색깔이 수시로 바뀌는 중국 전통 예술) 전수자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현란한 기술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마술사의 실제 삶은 어떠할까? 분장 속에 감춰진 그의 얼굴은 나이보다 훨씬 앳된 소년의 모습이다. 마술사라는 꿈을 가지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을까. 대한민국 1% 마술사 구본진 씨가 전하는 무대 뒤 마술사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평생 마술만 해 본 남자
구 씨가 마술사가 된 것은 집 안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그는 원래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예고 준비생이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베토벤, 모차르트 곡까지 마스터했다.
그런 와중에 종합 예술 격인 마술의 매력에 빠졌다. 현란한 퍼포먼스와 음악, 무대 위 조명에 매료되었다. 보는 것보다 직접 해보면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독학으로 마술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마술동아리를 만들고 책이나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기본기를 익혔다.
인터넷 동호회로 알게 된 지인들과 마술 연습을 하고 마술사를 만나 직업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경북 고령에 살던 구 씨는 서울에서 열린 국제 마술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독학으로 익힌 실력이라 입상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실전경험을 쌓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 씨는 공연기획사를 운영하시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지방 축제, 복지시설 위문공연 등 설 수 있는 무대에는 모두 올랐다. 그러던 중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천극 변검을 보고선 또 한 번 매료되었다. 쉴 새 없이 얼굴이 바뀌는 변검 예술은 마치 마술의 극치가 아닐까 싶었다.
변검 기술은 구 씨가 다른 마술사와 차별화를 만드는 큰 무기가 되었지만 배우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변검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이다. 이미 무대 경험이 많았던 그는 직감적으로 변검이 관중에게 주는 흥분과 즐거움을 간파했다.
반드시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수소문해 변검 전수자인 중국인 사부님을 찾아냈다. 중국어는커녕 영어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번역기를 써가며 이메일을 썼다. 곧바로 날아온 대답은 'NO'.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연락하는 아이라고 생각한 사부님도 결국 배우고 싶다면 중국으로 오라는 답장을 주셨다. 고3 수험생이 되기 직전 겨울, 3년 간 꾸준히 요청 메일을 보낸 끝에 변검 기술을 배울 기회를 얻어 중국으로 갔다.
사부님은 치과의사 출신 천극 배우였다.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 사부님은 좋은 직업 대신에 사명감을 가지고 변검을 연마하고 계셨다. 변검은 중국 내에서도 기술 전수가 엄격하게 보호받는 전통 예술이다. 구 씨는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배움에 임했고 이듬해 초 핵심 기술을 전수받았다.
변검을 배운 직후에도 마술을 처음 배웠을 때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빨리 국내에서도 선보이고 싶단 생각에 귀국 후 곧바로 공연을 시작했지만 얼굴 색깔이 바뀌지 않는 큰 실수를 범했다.
이번에도 첫 마술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재차 기본기를 쌓겠다고 다짐했다. 여태껏 마술사 이외의 직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끊임없이 연습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수많은 공연 그리고 완벽한 준비가 현재의 '대한민국 대표 변검 마술사' 구본진을 만들었다.

◆마술 자영업자
"현직 마술사라면 누구라도 마술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뜯어 말릴 겁니다. 무대 위에서의 화려한 모습만 상상한다면 오산이에요. 마술사는 언제나 고독해요. 잡무는 얼마나 많은데요."
구본진 씨는 잘 나가는 마술사다. 마술사로 자리 잡기도 어려울뿐더러 생계를 꾸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런 와중에 그는 마술로 돈을 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 그도 자신을 여타 자영업자에 비유했다.
마술사라고 해서 마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준비해야 한다. 이벤트 문의가 들어오면 스스로 매니저가 되어 일정을 조율하고, 공연 분위기에 맞는 주제를 정해 의상부터 음향, 연기 내용과 시간을 결정한다. 물론 회계 관리도 혼자서 해야 하고 다른 팀과 합동 공연이 있을 때도 직접 연락해 상의한다.
모든 영업과 실무적인 일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마술 연습을 시작한다.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높아 회사에 소속된 한두 명을 제외하곤 대한민국 마술사가 혼자서 잡무 처리를 다 합니다. 그마저도 마술을 업(業)으로 할 수 있는 1%만이 일할 기회를 얻어요. 그래서 항상 일에 지쳐도 감사하며 삽니다."
구 씨는 마술사가 고독한 직업이라 소개했다. 마술사는 비밀이 많은 직업이기 때문에 외롭다. 때로는 주변 사람이나 가족에게도 얘기하지 못하는 마술이 있고 끊임없이 혼자 연습하기 때문에 그 외로움은 배가 된다.
구 씨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본인의 생계를 위한 이유도 있지만 마술사로써의 자부심, 그리고 후배들을 위한 배려 때문이다. "마술은 신기하고 즐거운 거잖아요. 비밀을 알아버리는 순간 다른 사람은 즐길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마술사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철통같이 보안을 지키는 거예요."
외로움 때문에 생긴 웃(기고 슬)픈 습관도 있다. 연습 때나 무대 위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관객의 호응에 익숙하다보니 조용한 순간을 견디지 못 할 때가 있다. "연예인들이 인기가 없어지면 우울증에 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잖아요? 저도 공연이 끝나면 그 후 적막함이 너무 낯설어요." 구 씨는 집에 들어오면 조용한 집이 어색해 시끄럽게 텔레비전을 틀어두는데, 최근에는 현관을 들어서기 전부터 휴대폰 DMB를 크게 켜놓는다.

◆앞으로의 계획
구 씨는 대학교 진학 당시 연극학과를 선택했다. 마술학과에 들어가면 기술적인 부분은 빨리 익힐 수 있겠지만 공연 자체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는 무대 위 조명이나 음향효과에 대해 공부하고 무엇보다 표정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천극 변검의 경우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술과 마찬가지로 변검도 얼굴 색깔을 바꿀 때 시선을 분산시켜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동작 연기를 필요로 한다. 소품을 이용한 손동작이나 경쾌한 음악에 맞춘 발걸음, 그리고 움직이는 방향이 모두 연기에 속한다.
마술에 이어 변극에 도전했던 그는 최근 한국 국가무형문화제 7호인 '고성오광대'를 배우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천극 변검과 우리나라 탈춤을 융합한 '말뚝이 변검'을 개발해 소개했는데 전통 예술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 무형문화제를 전수받는 것이다.
그 와중에 대학원 진학도 준비하고 있다. 대학원에서는 예술경영을 배워 현재의 1인 기획사로 후배를 양성하는 회사로 키울 생각이다. 그가 본업에만 충실하기도 바쁜 와중에 다양한 도전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마술이 어려운 직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도전해 온 모든 일은 마술사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잘나간다고 해도 지속될 거라 확신할 수 없고 꾸준히 노력하고 개발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마술만으로 직업을 삼기에는 역부족이라 변검이 더해졌고 지금은 또 다른 특기를 익혀 더욱 새로운 모습을 관중들에게 선보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마술사란 직업이 타이틀을 달기까지도 국제대회 수상 등 여러 과정이 있지만 사실 그 이후가 더 험난하답니다. 물론 관중들의 호응을 받을 때면 그간의 고충이 싹 사라지기도 하지만 다시 준비하고 관중을 만날 때까지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마술사가 되고 싶다면 외로우면서 부지런할 준비가 되어야 해요. 남을 즐겁게 하는 직업인데 고독하다면 참 아이러니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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