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김원봉의 최종 목표는 김일성과 다르지 않았다

입력 2019-06-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는 좌파들이 활개 칠 공간을 활짝 열었다. 그 공간에서 좌파들이 벌이는 언동은 이해 못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둔갑시키려는 기획도 마찬가지다.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는 그 기획이 이제 실행 단계에 왔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인다. 이 기획은 러시아 혁명의 주역 중 하나로 스탈린과 권력투쟁에서 패한 뒤 암살당한 레온 트로츠키의 복권(復權)운동과 빼닮았다. 진실의 왜곡이자 모욕이라는 것이다.

1936년 숙청당하기 전까지 언행을 보면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도플갱어'였다. 1932년 그는 이렇게 썼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과업에 위배되는 범주를 설정하고 이에 위배되는 자유는 가차 없이 제거돼야 한다." 스탈린의 통치가 바로 이랬다.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압살한 것도 스탈린과 똑같다. 1923년 크로시타트 수병들이 볼셰비키 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며 봉기했을 때 진압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 트로츠키였다.

이런 불결(不潔)한 과거는 1937년 미국 철학자 존 듀이가 이끈 국제 민간조사위원회의 모의재판으로 덮어졌다. 위원회는 1936년 소련이 궐석재판에서 트로츠키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적용한 반혁명죄를 무죄로 판결했다. 이때부터 서구 지식인들은 트로츠키를 민주적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다 스탈린에게 희생당한 불운한 혁명가로 세탁하기 시작했다. 이런 재평가는 1940년 그의 암살로 '확정적'이게 된다. 그러나 이는 멋대로 상상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트로츠키가 권력을 잡았어도 스탈린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의미 없는 '역사의 가정'으로 치부할 수 없다. 마르크시즘 역사에 정통한 폴란드 출신 영국 역사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결론이 바로 그렇다. "트로츠키가 책임을 떠맡았어도 그의 권위에 위험이 된다고 생각되는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스탈린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모두 자신만이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이다.

김원봉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항일 무장투쟁의 최종 목표에서 김원봉은 자신을 숙청한 김일성과 하나였을 것이란 얘기다. 그 목표란 한반도 적화(赤化)다. 김원봉을 '판에 박힌 공산분자'라는 고(故) 장준하의 결론, 6·25 남침 수행 공로로 1952년 김일성에게 최고 상훈(賞勳)의 하나인 '노력훈장'을 받은 사실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좌파들은 "숙청당했으니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설(妖說)로 이런 증거들을 '물타기' 한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숙청당하고 살해된 것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것으로 분칠한 서구 지식인 사회의 '몰(沒)지성'의 재판(再版)이다. 트로츠키는 권력을 놓고 스탈린과 다투었지 자유를 위해 다투지 않았다. 김원봉이 숙청된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결과일 뿐 대한민국 건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했다. 김원봉의 항일 무장투쟁을 애국이란 차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음이 문제다. 그는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남침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그것도 애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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