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안녕, 아스피린

입력 2019-06-11 09:43:11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칠흑 같은 밤이었다. 몇 시나 되었을까? 날 선 전화기 소리에 잠을 깼다. 전임의 였다. "선생님 심근경색증 환자입니다." 새벽 3시. 주변은 고요하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환자의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하다. 환자는 심장 쇼크로 쓰려져 이송된 상태로 의식이 없다. 막힌 심장혈관을 급하게 열어보았지만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현대의학에서도 쇼크로 인한 저산소성 뇌손상에는 마땅한 치료 약이 없다. 저절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볼 수 밖에. "요즘 세상에도 약이 없어 치료를 못한다니 말이 됩니까?"라는 보호자의 원성만이 귓전을 맴돌 뿐이다.

신약개발의 꿈은 인류의 생존과 궤를 같이 한다. 고대 인류는 독과 약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나 점토, 종이 등의 기록수단을 발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대의 기록을 지금 시각에서 보면 기가 찬 것들이 많다. 그들은 질병치료를 위해 악취를 풍기는 동물의 똥이나 오줌, 썩은 고기, 심지어 돼지의 귀지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왜냐면 질병은 악마가 몸 속에 침투하여 만들어낸 나쁜 현상이며, 이를 쫓아 내려면 악마가 싫어하는 더러운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도 불로장생하는 약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생로병사가 있는 동물에 반해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하지 않는 광물에 착안했다. 유황과 단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유황은 비소화합물, 단사는 수은을 포함한 화합물로 불로장생은 커녕 즉사할 수도 있는 독극물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약물은 무엇일까? 바로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의 생산량은 연간 5만톤에 달한다. 이를 일직선으로 늘어 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한번 반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아스피린이 만들어진 계기는 지극한 효심 때문이다. 아스피린을 발명한 펠릭스 호프만의 아버지는 매일 밤마다 만성적인 류마티스 관절통으로 잠 못 들고 고통스러워했다. 아버지의 고통을 없애주고 싶었던 스물아홉살 청년의 간절함이 오늘날의 아스피린을 있게 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달래 주는 건 아스피린 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탄생했기에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지도 모른다.

최근 불거진 인보사 사태는 그런 면에서 더 가슴 아프고 충격적이다. 20년간 정부의 막대한 예산지원을 받으며 개발된 700만원이 넘는 고가 약 인보사는 국내 최초 유전자치료제, 획기적 신약, 세계 최초 퇴행성관절염 유전자치료제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한 채 허가 1년여만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유전자 도입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신장유래세포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면서다. 회사대표는 수백억의 퇴직금을 챙겼지만, 3천400명이 넘는 환자에게 남은 것은 부작용의 공포뿐 이다.

신약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녹록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쓰레기 약'을 사용하던 과거 인류보다 더 똑똑한지는 의문이다. 왜냐면, 주변 약국을 한 바퀴만 둘러봐도 여전히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 입증된 신약만이 고통 받는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신약이 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