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대통령의 협상

입력 2019-06-06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낙원의 새를 잡을 수 없다면 비 맞은 암탉을 잡는 것이 더 낫다."

협상에서 최선이 불가능하면 차선을 택하라는 뜻이다. 소련공산당 서기장이던 니키타 흐루쇼프의 말이다. 그는 좌충우돌하는 성격이었지만, 의외로 협상을 중시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보다 먼저 개발해 핵전쟁의 공포를 안겨주며 '협박을 통한 협상'을 추구한 인물이다.

협상을 중시하는 시대인 만큼 눈길을 끄는 관련 서적이 있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쓴 '대통령의 협상'(위즈덤하우스 간)이다. '노무현과 문재인, 무엇으로 마음을 움직이는가'라는 부제만 봐도,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저자의 집필 의도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조 교수는 협상 전문가인 로저 피셔 하버드대 교수의 협상 원칙을 제시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을 분석했다. 인세를 노무현 재단에 기부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당연히 호평 일색이다. 조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을 타고난 전략가로, 문 대통령을 바둑으로 다져진 후천적 전략가로 칭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 '협상 당사자의 태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중략) 문 대통령만큼 진정성 있고 그 진정성이 잘 전달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고 썼다. 과거에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이 돋보였을지 모르지만, 요즘 문 대통령의 협상 능력은 거의 낙제점 수준이다. 한 달 가까이 여야 대표 회담의 형식을 놓고 벌이는 한국당과의 협상 과정은 누가 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문 대통령이 한국당을 겨냥해 공개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황교안 대표를 회담에 참석하길 바라는 것만 봐도 협상의 기본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피셔 교수가 제시한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라'는 첫 번째 원칙과 거리가 먼 행동이다. 청와대가 경제가 급하고 추경 통과를 원하면서도 회담 형식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피셔 교수의 두세 번째 원칙 '협상의 목적, 즉 이익에 초점을 맞춰라' '상호 이익이 되는 옵션을 개발하라' 와도 배치된다. 조 교수가 몇 년 후 문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을 평가하면 지금과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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