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뭐여, 청주에 청남대만 보고 갈라 그랬슈?

입력 2019-05-29 18:00:00

20년간 대통령의 별장이던 청남대
이종교배의 자연스러움, 운보 김기창의 집
물부심 철철 넘치는 초정약수터... 31일부터 축제
한 바퀴만 둘러봐도 4km, 청주의 허파 상당산성

관람객들이 청남대 대통령기념관 앞 양어장 데크길을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관람객들이 청남대 대통령기념관 앞 양어장 데크길을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청주다. 한때 '교육의 도시'라 불렸다. 한국교원대, 청주교대의 이미지가 강했다. 지금은 통합 청주시다. 청원군과 청주시가 합쳤다. 인구도, 면적도 대형 도시 규모다. 세종, 대전과 붙었다. 웬만한 광역시 부럽지 않다.

다소 특별한 관광 자원도 갖고 있다.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다. 대청호 하나만으로 바다를 낀 유명 관광지에 필적한다.

청남대만 보고자 달려간 청주행엔 미련이 남는다. 매력적인 관광 코스가 뒷목을 끈다. 상당산성, 운보의 집, 초정약수터가 가깝다. 초정약수터에 서서 돌아갈 길을 찾으니 속리산이 바로다. 상주가 지척이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청남대

농업기술 중에 '휴경지 농법'이라고 있다. 지력을 돋우기 위해 땅을 일부러 놀린다. 사람도 10년 정도 일하면 안식년을 맞는다. 잘 쉬어야 일도 잘 한다. 이 원리는 여행지에서도 통한다. 사람의 손을 덜 탄 곳일수록, 방문자수를 제한할수록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여행사전에서 '순수'와 '보안'은 동의어다. 청남대는 비무장지대, 곰배령과 같은 부류다. 예약이 필수인 국내여행지다. 청남대 안에 주차를 하려면 방문 하루 전날까지 예약을 해야한다. 주차료는 2천원, 입장료는 5천원(성인 기준)이다.

청남대 대통령광장에 전시된 역대 대통령 동상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청남대 대통령광장에 전시된 역대 대통령 동상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된 지 16년이다. 2003년 4월 18일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과 이곳에서 하루 머물렀다고 한다. 청남대를 국민의 것으로 내놓으러 온 길이었다.

그해부터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한국관광 100선'에서 빠지지 않는다. 들어서는 길부터 명품이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백합나무 숲이다. 매년 울트라마라톤대회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청남대를 출발해 대청호반과 피반령을 거쳐 청남대로 돌아오는 1박 2일 100㎞코스다. 마라토너들의 로망이다.

대청호에 접해있는 전두환 대통령길을 관람객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청호에 접해있는 전두환 대통령길을 관람객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청남대를 만든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이전까지 별장으로 쓰이던 저도가 서울과 멀었고 경호에 애로점이 많아서였다고 한다. 서울과 가까운 대청호가 낙점됐다.

저도는 경남 거제에 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하계휴양지로 이용되다가 박정희 대통령 때 '청해대'로 명명된 별장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썼던 그곳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푸른색 블라우스에 긴 치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남대를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탄핵되기 전 마지막 여름휴가를 보낸 곳도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이었다.

청남대로 들어서면 대통령기념관 별관이 먼저다. 청남대에는 대통령기념관이 두 곳 있다. '대통령기념관 별관'이라 이름 붙은 것과 '대통령기념관'이라는 건물이다. 후자가 청와대처럼 생긴 건물이다. 드넓은 청남대를 돌아보고 나오면 별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게 후회될지 모른다.

대통령기념관 맞은 편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 쉬면서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 관람객들의 선호 공간 중 한 곳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통령기념관 맞은 편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 쉬면서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 관람객들의 선호 공간 중 한 곳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통령기념관'도 실속있는 건 아니다. 현재는 1층만 개방돼 있다. 역대 대통령의 대형 기록화만 몇 점 있다. 대국민연설 단상, 국무회의장 등 대통령체험장이 있던 지하 1층과 2층은 보수중이다. 1층 로비가 눈길을 끌었다. 남북정상회담 사진 기록물로 메우고 있었다. 집권기에 따라 바뀐 전시물이다. '대통령기념관'의 운치는 내부 내용물보다 바깥 풍경에 있다. 바로 앞 양어장과 메타세쿼이아 숲 덕분이다.

◆누구를 택하든 최상의 산책로, 대통령길

청남대는 어디를 선택하든 훌륭한 산책로를 내어준다. 관람객들이 대청호를 보면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청남대는 어디를 선택하든 훌륭한 산책로를 내어준다. 관람객들이 대청호를 보면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1983년 조성된 청남대는 20년간 역할을 다 했다. 이곳에서 휴가를 보낸 대통령은 5명.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태생적으로 대통령의 취미와 개인취향이 반영되어야 했다. 수영장이, 골프장이, 테니스장이, 러닝공간이, 산책공간이 하나씩 의미를 부여받고 자리를 잡았다.

이들 대통령을 소재로 청남대는 대통령길이란 걸 만들었다. 전두환(1.5㎞), 노태우(2㎞), 김영삼(1㎞), 김대중(2.5㎞), 노무현(1㎞), 이명박(3.1㎞)까지 6곳이다. 전체를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총 11.1km를 모두 보는 데 4시간 이상 걸린다. 핵심시설이라 할 수 있는 본관(대통령 숙소)과 대통령기념관까지 챙기면 5시간을 훌쩍 넘긴다. 그래서 관람객 대부분은 본관과 대통령기념관을 본 뒤 각자 선호하는 대통령길을 둘러본다. 외따로 떨어진 이명박 대통령길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김영삼 대통령길 옆 골프장에 도열해 있는 낙우송 그늘 아래에서 관람객들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김영삼 대통령길 옆 골프장에 도열해 있는 낙우송 그늘 아래에서 관람객들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통령길은 대체로 걷기 편하다. 단, 김대중 대통령길은 등산을 각오해야 한다. 전망대와 연결되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고진감래다. 관람객 대부분은 전두환 대통령길이나 김영삼 대통령길을 택한다. 전망이 좋아서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길은 골프장을 끼고 있다. 골프장 쉼터인 그늘집도 있다. 대청호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어 관람객의 인기를 끈다. 조깅을 즐겨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습관에 헌정된 길처럼 보인다. 40년 넘은 낙우송 50여 그루의 뿌리에 생명력이 느껴진다. 달리는 이들의 관절처럼 땅 위로 울룩불룩 솟아 있다.

대통령길을 산책하면 으레, 스스로 내뱉든 다른 이에게든,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관리가 잘 됐다', '보존이 잘 됐다'는 탄성이다. 보안이 철저했던 곳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관리를 충청북도로 넘겨주기 전까지 이곳은 1급 경호시설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경비를 담당했으니 대통령 없는 곳에 누가 왕이었을까. 야생동물들이 힘의 논리로 왕좌를 차지했을 것이다.

대청호를 조망할 수 있는 오각정 정자에서 관람객 커플이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청호를 조망할 수 있는 오각정 정자에서 관람객 커플이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하긴 군정시기엔 별별 소문이 다 있었다고 한다. 열린 권력이 아니었기에 수군거리기도 편했다. '대통령이 대청호에서 낚시를 하면 특수부대 대원들이 잠수를 해서 낚싯바늘에 월척을 물려놨다'는 둥, '청남대 공사에 동원됐던 인부들이 어느 샌가 사라지고 없다'는 둥 개그인지 호러인지 분간하기 힘든 소문이었다. 비밀스러운 영역이었기에 감수해야할, 요즘이라면 팩트체크라도 할 만한 괴소문이었다.

◆이종교배의 자연스러움, 운보의 집

청주시 내수읍에 있는 운보의 집 전경. 정원과 한옥이 조화를 이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청주시 내수읍에 있는 운보의 집 전경. 정원과 한옥이 조화를 이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한국 근대 미술사의 거목 故 운보 김기창 화백의 집이다. 1976년 역시나 화가였던 부인 박래현 화백과 사별한 뒤 1984년 운보의 외가마을인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운보의 집'으로 알려진 곳은 정원으로 유명한 한옥집, 운보미술관, 조각공원까지 포함한 공간을 뜻한다. 6천원의 입장료가 있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을 통해 더 알려진 고풍의 정원이 압권이다. 1979년 공사를 시작해 1984년 준공한 한옥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한옥집 안에는 운보가 사용했던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테레사 수녀의 사진과 함께 가톨릭 성상인 예수상이 있다. 가톨릭신자였음을 짐작한다.

한옥집 아래 지하공간이 있다. '예수의 생애관'이라는 이름으로 성화(聖畫) 30점이 전시돼 있다. 서양화풍 일색의 성화를 동양화로 그려냈다. 전통한옥의 지하공간과 동양화로 그린 예수의 생애는 이종교배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한옥집 지하에 마련된
한옥집 지하에 마련된 '예수의 생애관'에 걸린 성화를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운보는 1952~1953년 한국전쟁 기간 동안 예수의 일대기를 동족상잔을 겪는 우리와 비슷하다고 여겼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성화들을 그렸다고 한다. 성화 속 인물들은 모두 한복을 입었다. 예수의 모습도, 동방박사도, 예수를 핍박하는 자도 모두 한국인의 모습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요새, 상당산성

산성은 방어용 요새다. 공격하는 입장에선 기어 올라와야 했다. 성문으로 가려면 오르막이 한참이다. 성문에서 보자면 돌을 굴려도 무기가 될 만큼 내리막이다. 요새에 있는 자가 유리한 입지다. 개방성이 뛰어나다. 누가 공격해오는지, 혹은 오고 있는 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해야 했다.

상당산성 공남문의 모습. 산성을 따라 걷는 것도 등산이나 진배없을 만큼 숲이 울창하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상당산성 공남문의 모습. 산성을 따라 걷는 것도 등산이나 진배없을 만큼 숲이 울창하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성은 말끔하다. 후삼국의 견훤과 왕건이 전투를 벌인 게 큰 싸움이었다.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임진왜란 때 일부 고쳤다고 한다. 숙종 때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았다. 이후 소소한 개보수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그 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화의 시대엔 휴양지나 놀이터로 제격이다. 사방에 깔린 숲은 피톤치드 산책길이 돼 준다. 돗자리 깔고 늘어진 자세들도 편하다. 여름 밤 별이 우수수 떨어지는 진풍경을 담기도 좋다. 가을엔 낙엽길이 되고 겨울철에는 눈썰매 슬로프가 된다. 평시에는 운동 코스로 삼아도 될 법하다. 1시간 30분 거리로 산성 둘레가 4km를 넘는다.

산성에선 청주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남문(공남문)으로 가야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내려가는 자동차길이 무척 위험하다. 인근의 명암저수지도 볼거리다. 국립청주박물관이 가깝다.

◆물부심 철철, 초정약수터

600년이 넘은 물에 대한 자부심이다. 조선시대 세종과 세조 부자가 대를 이어 행차했다니 요즘으로 치면 왕립 아쿠아테라피센터쯤 된다.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축제'라는 이름으로 31일부터 축제도 연다. 축제 때마다 원탕을 열어 물도 길었는데 올해는 쉰다. 주변은 한창 복원 사업이 진행중이다.

가까운 곳에 목욕시설이 있다. 옛 기록에도 눈병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한다. 민간에서는 약효가 좋은 한여름에 이곳을 찾아 목욕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욕장 인근에 보리로 콜라맛을 내던 음료회사 공장이 보인다.

지방도 인접한 곳에 물을 받으려는 질서정연한 줄이 보인다. 사람의 줄이 아니라 물을 담으려는 말통의 줄이다. 줄이 꽤 길다. 맛만 보자며 한 잔만 달라고 하니 흔쾌히 컵을 씻어 담아준다.

탄산이 강하다. 우리지역 명품 약수인 청송 신촌약수의 철분 맛에 비하면 달다. 지하 100m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약수라 톡 쏘는 맛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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