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중미 불법 이민, 강경 이민정책으로 억제될까

입력 2019-05-20 11:11:58 수정 2019-05-20 18:27:25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고학력자와 숙련 기술자를 우대하는 능력 기반 이민정책 계획을 발표했다. 새 이민정책의 핵심은 학력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취업 이민 우선권을 줌으로써 가족 단위 이민을 막아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국가 안보를 강화하는 데 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대부분 가족 단위로 구성된 중미 출신 불법 이민자, 즉 캐러밴(Caravan·중미 출신 이민 행렬)의 미국 유입은 어려워진다.

캐러밴은 미국 이민을 목적으로 집단을 이뤄 미국 국경으로 이동하는 중미 사람들의 행렬을 말한다. 이들은 수백에서 수천 명 단위로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데, 이는 갱단 등의 표적이 되어 범죄에 희생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캐러밴 행렬은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를 거쳐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멕시코 티후아나까지 4천300㎞를 도보로 혹은 기차 지붕과 트럭 짐칸에 매달려 목숨을 건 이동을 하고 있다. 중미 국가들의 치안이 매우 불안하고 빈곤이 심각해지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희망하며 미국행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러밴 행렬은 2013년부터 시작됐지만, 작년 10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민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새 이민법도 2020년 재선 성공을 위해 반(反)이민 정책을 다시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캐러밴은 멕시코로 계속 유입되고 있지만, 미국의 초강경 대응에 멕시코 국경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은 멕시코가 불법 이민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멕시코 국경 폐쇄, 멕시코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 등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멕시코는 합법적 절차와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며 멕시코에 입국한 캐러밴의 임시 체류와 본국 송환을 돕고, 멕시코 통행허가증을 발급하거나 멕시코 이민을 허가했었다. 국민들도 멕시코를 통과하는 캐러밴에 음식과 차량, 거처 등을 제공하였지만 캐러밴 행렬이 계속 밀려들자 예전만큼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는 중미 3개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한 미국에 원조 지속을 요구하면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중미 3개국이 불법 이민 억제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며 원조 중단을 선언했지만, 멕시코는 미국의 원조로 중미 지역의 정치적 안정과 빈곤을 해소하게 되면 이 지역 출신 불법 이민자의 미국 유입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캐러밴의 80% 이상은 온두라스에서 출발한다. 1980년대 온두라스는 친미 정권과 그에 대항하는 공산 반군 사이의 내전이 치열했지만, 이웃 니카라과에 산디니스타 혁명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이 니카라과 혁명정부를 전복시킬 반군 훈련 기지를 온두라스에 설치하는 등 중미 지역 공산화 저지를 위한 미국의 거점 역할을 하였고, 미국의 원조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중미 지역의 내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원조를 줄이자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내전 이후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치안 불안과 가난이 심각해졌다. 2009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지난해 대선 부정선거로 혼란이 지속되면서 미국 이민을 감행하는 캐러밴이 급격히 증가했다.

캐러밴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동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국 심사가 매우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다 또 모든 밀입국자는 형사기소되기 때문에 멕시코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린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수감될 수 없는 18세 미만 자녀와 부모가 분리 수용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족분리 정책이 불법 이민자 축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는 트럼프 정부. 국내 정치와 캐러밴의 인권은 분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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