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7회)

입력 2019-05-20 17:30:0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분이 서로 존대어를 쓰셨고 부부싸움을 하신 날에도 잠은 꼭 한 방에서 주무셨다.

어려운 살림에 어찌 고단하고 힘들지 않았을까 만은, 삯바느질로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며 묵묵하게 그리고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님!

오신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전신 마비가 되어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차남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끝에 의사로 의대교수로 키워내신

어머님!

맏며느리가 하늘나라로 가자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인 어린 손자 손녀를 손색없이 키우신 어머님!

경상도 사나이의 전형이시던 아버님이 84세로 당신의 곁을 떠나던 그 날까지 진정한 내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던 어머님!

평생을 독서와 기도를 취미로 하시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종기도를 하셨던 어머님!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느냐고 질문하면 씩 웃으시며 "딱 두 가지다"

라고 하셨지요.

"하나는 너희들 잘되라고 또 하나는 내가 너희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하셨지요.

어머님!

용서해주세요.

어머님께서 놀라실까봐 셋째가 먼저 간 것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아차! 지금쯤 영곤이를 만나서 더 놀라셨겠네요.

어머님!

떠나시면서 저희들에게 남긴 무형의 유산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좋은 것은 무형의 유산이라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네요..

어머님!

상속세 대신에 어머님 가르침대로 남을 배려하고 관용하면서 일하듯이 기도하고 기도하듯이 일하면서 살게요.

참! 어머님 제가 이번에 신인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네요.

내달 초순에 상 받으면 어머님께 꿈 속에서 라도 드릴게요.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네요.

어머니!

부디 불효자식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보필 잘 하십시오.

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제 꿈나라로 오세요.

저도 어머니 보고 싶으면 꿈나라로 달려갈께요.

어머님!

안녕히 계세요.

제일 속 많이 섞힌 차남 올림.

▶쌍둥이 에피소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나의 가장 어릴 적 기억은 할머니에 닿는다.

할머니께서 외출을 하실 때 웬만한 곳이면 쌍둥이 손자들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전차만 타시면 아무도 물어본 사람도 없는데 애써 다가가 ''우리 손자요. 우리 쌍둥이 손자. 참 예쁘지요?''하고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다.

일면식도 없으면서도 예외 없이 "고놈들 참 귀엽네"라고 대꾸를 해주었다.

워낙 많이 닮아 친척들도 구분을 잘 못했다.

음성은 너무 비슷해서 아버지께서도 '큰 곤이냐? 작은 곤이냐?'라고 물어보실 때가

적지 않았다.

쌍둥이로서 에피소드가 한 둘이 아니지만 참 난감할 때도 있었다.

여름방학 때 청주 어느 이발소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인사를 하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엉거주춤 아는 채를 하고는 이발이 끝나고 이발비를 내자 아까 그 사람이 내 것도 함께 내고 갔다고 했다.

쌍둥이 동생을 잘 아는 누군가 나를 동생으로 착각을 한 것이 분명했다.

집에 돌아와 쌍둥이 아우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기는 했는데 아우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감이 안온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아우는 그 사람에게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도대체 누구인지 알아야 고맙다는 인사라도 전할 텐데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움이란 끝이 없는 것인가

언제까지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달래야 하는가

밤 사이에 별빛 타고 와서는

내 창가를 가만히 두드리다

말없이 돌아서는

너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다

화들짝 놀라서 달려 나갔지만

어느새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가버린 너의 흔적에

눈물로 답하는

이 안타까움은 또 어찌해야 하는가

쌍둥이 아우야

그토록 그리움이 몸서리 친다면

우리

이전 처럼 그렇게 함께 살자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함께 살자

그리움이 끝이 없다면

차라리 함께 살자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문학상 대상 당선소감문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고 넝쿨 장미가 흐드러진 오월에 윤동주시인 탄생 백주년기념 문학공모전에서 뜻밖의 대상 수상소식에 접하고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하얗습니다.

의사대상은 받은 적은 있지만 고등학교 재학 중 대상을 받은 이후 문학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은 거의 반백년만입니다.

의과대학시절 '필내음'이라는 문학 동아리에서 오세영 교수님께 잠깐 지도를 받은 후

진료에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외도를 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진한 무엇인가가 남아있었고 문학에의 갈증은 여전하여 2년 반 전에 영남문학신인상으로 늦깎이 등단을 하였습니다.

짬짬이 떠오르는 시상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 오늘의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 생명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가 되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공이 되어 우울에 지쳐

삶을 포기하고자하는 환우들을 위해 그리고 밤을 하얗게 밝히는 불면증 환우들을

위해 아무리 시시한 것에도 철학이 있다는 신념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겠습니다.

비우고 버리면서 밝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고운 마음으로 읽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흡하고 미흡한 졸작을 대상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영남문학예술인협회 가족들 그리고 문학시선 가족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래보고 자세히 보면서 아름다운 시어에 살아있는 철학을 입히는 작업을 더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성하지 않은 남편 곁에서 40년을 자나 깨나 애기 돌보듯 보살펴주는 내 사랑 한용희,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내 등불 종원, 내 희망 종윤에게 고맙다는 인사 전합니다.

늘 그래왔듯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일하듯 기도하면서 나머지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채우겠습니다.

서쪽하늘로 지는 멋지고 값진 석양이 되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끝〉

(5월28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장선작인 민윤숙의 "아니야, 안 돼, 안 돼." 첫 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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