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질타 받은 '개그콘서트', 위기 극복할 해법은 없을까

입력 2019-05-15 12:30:34 수정 2019-05-16 18:22:45

‘개그콘서트’는 과연 시대변화에 적응해 왔을까

개그콘서트
개그콘서트

어느새 '개그콘서트'가 1천회를 맞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축하 박수 소리가 날 법 하지만, 어쩐지 분위기는 정반대다. 끝없는 시청률 추락과 점점 사라져버린 화제성으로 위기를 맞고 있어서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개그콘서트'의 위기를 불러왔을까.

개그콘서트 1천회 기자담회. KBS제공
개그콘서트 1천회 기자담회. KBS제공

◆'개그콘서트' 1천회 기자간담회에 쏟아진 질타

지난 13일 KBS 신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1천회 기자간담회는 결코 축하의 자리가 되지 못했다. 1000회라는 엄청난 수치와 무려 20년 간의 명맥을 이어온 프로그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지금의 '위기'에 대한 것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한 때는 무려 30%(닐슨 코리아)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요일 밤 주말이 아쉬운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던 이 프로그램은 2012년부터 추락을 거듭해오더니 현재는 5%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지워져가고 있다. 기자들이 축하보다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묻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의 이런 아픈 질문에도 1천회를 맞는 제작진이나 개그맨들 당사자들도 이렇다할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축하가 아닌 질타의 모습에 사뭇 당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한때 '개그콘서트'를 이끌었지만 잠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신봉선은 이것이 온전히 개그맨들의 탓이 아니라는 걸 토로했다. 그는 희극인들이 생각 없이 앉아있는 게 아니며 여전히 아이디어는 많지만 "지상파 방송에 녹이는 게 어렵다"며 '개그콘서트'를 나갔을 때 "요즘은 이렇게 밖에 못하나 생각했는데 돌아오고 보니 개그에 제약이 너무 심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활동할 때 재밌었던 인기 코너를 지금은 못 올린다"며 달라진 환경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전유성은 이 자리에서 따끔한 지적을 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처음 자신이 '유머일번지'같은 TV의 인기 있는 개그를 대학로로 가져가 공연을 했고, 이후 '개그콘서트'는 거꾸로 대학로에서 충분히 검증이 끝난 코너를 다시 지상파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점점 "공연장의 검증 없이 제작진이 재미 여부를 결정해 바로 방송에 내보내기 시작했다"며 그것이 "나태하고 식상한 개그"가 됐다고 꼬집었다. 또 700회, 1천회를 기념하는 자리에나 자신을 부르고 정작 조언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는 제작진의 태도 또한 비판했다.

개그콘서트
개그콘서트

◆달라진 환경, '개그콘서트'는 변화에 대처하지 않았다

사실 현재 같은 상황에서 1천회를 '축하'의 자리로 꾸미려했다는 지점에서부터 벌써 '개그콘서트' 제작진의 안이함이 묻어난다. 지금 같은 상황에 어찌 축하라는 말이 가능할까. 차라리 그것보다는 솔직하게 지금의 위기를 인정하고, 그것을 깨치기 위한 공청회 같은 걸 1천회에 즈음해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미 위기의 징후는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보여진 바 있다. 이미 인터넷을 넘어 모바일로 미디어의 헤게모니가 바뀌어가고 있었고, 유튜브를 통해 리얼한 현장이 살아있는 짤방을 보는 일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여전히 짜여진 콩트 형식의 '개그콘서트'를 찾아볼 리가 만무였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신인 스타 개그맨이 등장하지 못해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과거 '개그콘서트'를 이끌던 개그맨들이 돌아와 추억의 코너들을 재연하기 시작한 건 퇴행에 가까웠다. 1천회 기자간담회를 김미화, 전유성, 신봉선, 유민상, 김대희 같은 과거의 영광을 이끈 선배 개그맨들로 가득 채우고 현재를 잇는 후배 개그맨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꽤나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미디어 변화와 함께 '개그콘서트'가 또한 그 변화를 알고 있으면서도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감수성의 변화'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외모비하나 가학성, 피학성, 성차별 같은 그간 '개그콘서트'의 대부분 코드를 채우고 있던 소재들이 모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지만 이를 대체할만한 개그소재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늘 해왔던 방식으로 한 주 한 주를 그저 채워 나가다보니 새롭게 검증된 개그소재를 실험하지 못했고, 나아가 '확실한 웃음 코드'가 되던 논란의 소재들을 마치 차포 떼듯 떼놓고 내보내다 보니 "재미없다"는 말을 듣게 된 것. 물론 원종재 PD가 "요즘 못생긴 개그맨은 뽑지 않는다"는 말로 설명한 것처럼, KBS라는 공영방송의 잣대가 더 엄격한 면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tvN '코미디 빅리그'가 하는 개그들을 '개그콘서트'는 하지 못한다. 그러니 재미의 차원으로만 보면 '코미디 빅리그'는 재밌는데 '개그콘서트'는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영방송이라는 위치는 과거 한 때 날카롭던 풍자 개그 같은 것들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이유로 작용했다. 물론 직접적인 외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여러 차례 '소송까지 겪으며' 생겨난 자기검열은 시사나 정치 같은 소재를 점점 피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보면 '개그콘서트'가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는 건 자명해 보인다. 어느 정도의 여지도 부여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 1천회 기자간담회를 찾은 전유성, 김미화와 김대희. KBS 제공
개그콘서트 1천회 기자간담회를 찾은 전유성, 김미화와 김대희. KBS 제공

◆결국 해법은 개그맨들의 생존에 있다

그렇다면'개그콘서트'를 새로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지금 이대로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그것은 매주 무대를 채워야 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잠시 휴지기를 갖고 재정비를 한 후 돌아오는 게 정상적인 해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기도 문제는 남는다. 그 많은 개그맨들의 당장의 생계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당장의 희생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개그콘서트'는 이제 시즌제를 고민해 봐야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저 매주 프로그램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 충분한 검증기간을 거쳐 시즌제로 담아내는 게 훨씬 밀도 있는 코미디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대신 휴지기 동안 많은 개그맨들이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할 듯싶다. 무대 개그가 아닌 현장성을 강조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개그맨들을 출연시켜 그 가능성을 찾아보고 '개그콘서트'와 연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개그맨들이 유튜브 등에 1인 방송을 하며 크리에이터로서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 건 그 쪽이 훨씬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을 방송이 끌어안아 프로그램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른바 '관찰카메라' 전성시대에 개그맨들처럼 재능 있고 가능성이 풍부한 자원이 있을까. 그들이 현장에서 웃기기 위해 만들어가는 다양한 노력들이 방송 프로그램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 웃음과 함께 감동도 줄 수 있지 않을까. '개그콘서트'를 반드시 공개무대라는 형식적 틀로만 고집할 게 아니라, 지금의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맞게 시즌2로 재포맷하는 고민도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개그콘서트'를 만든 건 결국 무수한 개그맨들이다. 그러니 이 위기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은 개그맨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충들을 들여다보고 드러내지 못하는 끼와 재능들을 최대한 꺼내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일. 그것이 '개그콘서트'가 현재의 위기를 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단지 갖가지 제약을 들어 스스로 자기검열 속으로 빠져들게 할 게 아니라.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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