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대통령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

입력 2019-05-13 06:30:00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큰 사고는 어느 순간 갑자기 터지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일정 기간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나타난다. 방치하고 무시하면 큰 재해가 닥친다. 이를 통계적으로 실증한 것이 미국인 허버트 W. 하인리히였다. 그가 쓴 '산업 재해: 과학적 접근 방식'에서다. 이는 오늘날 '하인리히의 법칙'으로 남았다. 요즘은 경제 현상을 두고 더 널리 인용된다.

우리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성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 1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부터 그렇다. 1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문제지만 더 불길한 것은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수출은 5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4월 한국 원화 가치는 G20 국가 중 외환 위기설이 도는 터키 다음으로 많이 떨어졌다. 국제 사회가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경기 부진' 진단을 내렸고 글로벌 신용 평가사들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기업들이 우리나라를 등지는 것도 안 좋은 징후다. 지난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액이 55조원에 달했다. 통계 작성 이래 최고였다.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만 11조6천억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틈만 나면 해외 진출 의지를 감추지 않는다. 고용에 기여하고 많은 법인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악인 소리 듣느니 해외로 나가 대접받으며 하겠다는 기업인이 부지기수다.

그런 나라에서 일자리 전광판을 만들어 대통령이 아무리 쳐다본다 한들 일자리가 생길까. 청년 체감실업률은 통계 작성 후 최악으로 치솟았다. 한창 일해야 할 청년들이 네 명 중 한 명꼴로 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 40대 일자리가 무더기로 사라지고, 세금으로 만드는 노인 일자리가 고용지표를 왜곡하고 있다.

서민 경제가 무너지는 조짐 역시 뚜렷하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한때 불야성을 이루던 공단 주변은 어둠이 깔리면 인적을 찾기 어렵다.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은 보험을 깬다. 보험 해지 환급금이 1년 새 2조원 늘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허울은 의도와 달리 최빈층 지갑만 가벼이 했다. 소득 최하위 20% 계층의 절반 이상이 무직자로 전락했다. 정부가 지난해 지급한 실업급여액은 사상 최대였다. 빈부 격차는 최악으로 확대됐다. 경제지표마다 수년 혹은 수십 년 만에 최악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이 지경이니 국민들이 나라 경제를 걱정한다. 문재인 정부 2년을 맞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경제정책에 대해 '잘한다'는 긍정 평가는 23%에 불과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여론조사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살림살이가 나빠졌다는 국민이 59%나 됐다. 그만큼 여론이 싸늘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한 것은 인정하라"고 말한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저임금 긍정 효과가 90%',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고 했던 바로 그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에게 '하인리히의 법칙'이 던지는 경고는 그저 '경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일 뿐이다.

이쯤되니 의문이 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대통령이 사는 세상이 다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대통령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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