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너무 익숙해져 그 소중함을 잊기 쉽고 가족은 너무 편해 서로를 쉽게 생각한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출생아가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1971년 102만4천여 명을 끝으로 우리나라는 100만 명 시대가 종료됐다. 이후 출산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아이가 많아 행복하다'는 다둥이 가족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넷째 복덩이가 기다려져요"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 사는 정정환·왕미진(36) 씨 가족은 3남매를 포함해 5명이다. 첫째 딸 채은(8), 둘째 아들 은범(6), 셋째 딸 가은(3)까지 이들 가족은 몇 달 있으면 태어날 넷째를 손꼽아 기다린다. '복덩이'라는 이름도 지어 놨다. 엄마 왕 씨는 "부부 사이가 좋아서 하나 더 생겼다"며 웃었다.
정 씨와 왕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우연히 길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몇 년을 연애하다 2012년 결혼했다. 정 씨는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영어 강사였던 왕 씨는 육아로 잠시 쉬고 있다.
이들 부부는 결혼할 때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딱히 몇 명을 낳아야겠다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남매로 자란 정 씨는 한 명 정도 더 있어 집안이 시끌벅적하길 바랐고, 자매밖에 없었던 왕 씨 역시 형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크게 계획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왕 씨는 "모두 '계획'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웃음꽃이 많이 피는 집을 많이 봤기때문에, 낳다보니까 벌써 네 번째가 됐다. 아들, 딸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행복이 그만큼 커졌다"고 설명했다.
정 씨 부부는 아이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다. 건강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란다. "저 더불어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만큼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 씨 부부는 아이들 싸움에 어지간하면 끼어들지 않는다. 못 들은 척 내버려두다가 언성이 높아지면 그때 개입하다. 그러나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각자 이야기를 들어보고 억울함을 다독여주거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 줄 뿐이다. "아이들이 많은 형제 속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것 같다. 나 혼자만을 챙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운다"며 만족해 했다.
성격이 활발한 첫째 채은은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챙긴다. 엄마 왕 씨는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돌본다. 책상·장난감 정리, 식사하기 전 수저 놓는 일 등 엄마 일도 도와주기도 한다. 자기 생활을 즐기면서 동생을 챙겼으면 하는데, 동생을 먼저 챙기는 것을 보면 첫째 성향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책임을 덜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채은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아빠 정 씨는 플로리스트가 꿈인 채은을 위해 가끔 새벽 꽃시장에 데리고 가기도 한다.
정 씨 가족은 방이 3개지만 함께 자는 날이 많다. "매트리스를 깔고 온가족이 함께 누워서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정 씨는 쉬는 주말이나 휴일엔 아내를 돕는다. 또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가족 수가 많아 외식이나 문화생활이 쉽지 않아 가끔 주말에 지인 가족과 바다와 들, 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난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보고 느끼며 얻게 되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야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천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 씨는 셋째을 낳은 뒤 7인승 차를 구입했다. "주로 남해로 가 갯벌 체험을 하는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왕 씨에게 정 씨가 남편으로서 점수가 어느 정도 되냐고 묻자 "200%"라고 엄지 척을 했다. "많이 도와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둥이는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제가 감정 기복이 심한데 동갑내기지만 저를 잘 다독여준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한결같다"고 했다.
몇 달 뒤면 이들 가정에 넷째가 태어난다. 주위에서는 '성비 균형에 맞게 딸보다 아들이면 좋겠다'고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저 막둥이가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왕 씨는 "넷으로 끝내겠다는 생각도, 더 낳을 계획도 아직은 없다. 왠지 5명까지 낳을 것 같다"며 깔깔 웃었다.
◆다문화 다둥이 가족 "우린 눈으로 통해요"
서정우(42) 씨는 200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도조안(35) 씨를 처음 만났다. 서 씨는 가도조안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예쁘고 착하게 보여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 이메일. 화상통화 등을 통해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1년 후 결혼했다. 가도조안 씨도 정우 씨를 처음 보는 순간 괜찮았다고 말했다. "남편이 재혼이란 사실을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는 첫째 서일교(15), 둘째 이교(8), 셋째 세희(5), 넷째 삼교(3) 등 3남1녀다. 가도조안 씨는 "일교는 전처 소생 아들이지만 내아들처럼 나를 잘 따른다"고 했다.
가도조안 씨는 결혼 후 2년 정도 한국에 살다가 사업을 위해 필리핀에서 5년 정도 있다가 지난해에 귀국했다. 떠날 때 일교와 이교를 데리고 갔다. "가정에 보탬이 될까해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됐다. 하지만 동업자가 배신하는 바람에 실패해 귀국했다"고 말했다.
가도조안 씨는 대구 생활 3년째가 됐지만 아직까지 한국말이 서툴다. "존대말이랑 한국말 바럼(발음)은 너무 어려워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며 웃는다. 가도조안 씨는 한글을 잘 몰라 속상하다고 했다. "저는 발음도 서툴고 쓰는 것도 안돼 애들을 못 가르친다. 그래서 많이 속상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서씨 집은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타갈로그어(필리핀 토착어)가 난무한다. 이때 정우 씨만 소외된다. 정우 씨는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만 아내와 애들 만큼은 안돼 나만 소외되는 것 같아 불만"이라며 웃었다. 필리핀에서 살다온 일교는 영어는 물론 타갈로어도 잘한다. 일교는 "영어는 학교에서, 타갈로어는 일상에서 배웠다. 한국말이 서툰 엄마와 대화할땐 주로 타갈로어를 쓴다"고 했다.
서 씨 부부는 아이들이 자기 삶에 대해 만족하고, 세상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면 부모가 아이를 충분히 사랑해줘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자존감도 생긴다"고 했다.
서 씨는 가끔 '둘만 낳아 네 가족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데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둘에서 끝나지 않고 네째까지 낳았는데, 가족은 힘듦을 상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그 많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걱정하지만 서 씨 부부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큰아이들이 어린 동생들의 엄마이자 가정교사가 돼 짐을 덜어 준다"며 "다둥이들은 그들만의 룰을 만들고 지키며 작은 사회를 꾸려나간다"고 했다.
서 씨는 다둥이를 낳은데 대해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섯 째 계획은 없다고 했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이제 끝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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