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시대를 사는 2030 리포트] <1>일자리 놓고 심화하는 세대갈등, 가정에서 폭발하면 가정불화로 번지기도

입력 2019-05-06 18:41:10 수정 2019-05-06 20:50:48

천륜 어긴 가정범죄 하루 평균 5건 발생

취업과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등 기성세대들에게는 누구나 거쳐 가는 당연한 과정이었던 일들이 어느 때부터 'N포 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년들에게는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일이 되고 있다.

이들이 이 당연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자리' 부족 탓이다. 워낙 취업문이 바늘구멍이 되다 보니 이들은 또래 청년들만이 경쟁 대상이 아니다. 40·50대, 60대 이상의 노년층과도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얻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로봇과 무인시스템까지 가세해 일자리를 위협한다.

그러다 보니 세대 간 서로를 견제하는 '세대 갈등' 양상도 심화해 사회적 불안감과 긴장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고리타분한 꼰대'로 폄훼하고, 반대로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인내심 약하고 개인주의 성향으로 가득한 '이기적이고 철없는 아이들'로 치부하며 충돌을 빚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 간 간극

2015년 기준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근로 빈곤을 겪는 청년은 전체 청년의 3분의 1가량(32.6%)이다. 특히 최근 고용상황이 가장 악화된 집단은 20대 남성이다. 20대 남성 고용률은 2000년 66.2%에서 2018년 56.1%로 뚝 떨어졌다.

힘겨운 청년 고용상황은 사회적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청년들은 전반적으로 학력이 높아졌지만 다양한 직종에서 경험 많은 기성세대와 일자리를 놓고 경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 이 과정에서 노력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한 청년들은 좌절감과 무기력함이라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취준생 생활 5년째라는 A(29) 씨는 "젊은층이나 하는 아르바이트로 여겼던 주유소, 편의점 일자리마저 중년·노인들에게 선점당했다. 지금은 하루하루 견딜 알바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 예산이 노인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도 불만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다. 2018년 아동·청소년 보건복지 예산 총액은 약 1조6천779억원에 불과하지만 노인 보건복지 예산 총액은 11조7677억원으로 10배가 넘는다.

B(25) 씨는 "기성세대는 청년수당, 청년보장제 등의 정책을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혜택을 보는 이들은 정말 미미한 수준이다. 다른 복지예산에 비해 턱없이 적은 청년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푸념했다.

더구나 고도성장 시대를 거쳐 민주화 운동에 이바지한 지금의 중·장년층은 취향의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 수평적 문화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철없게만 치부하는 것도 문제다. C(30) 씨는 "기성세대를 왜 '꼰대'라고 부르는지 직장생활 몇 개월 만에 뼈저리게 느꼈다"며 "집에서 아버지를 대할 때 느끼는 갑갑함이 회사에서는 수십 배나 더 컸다"고 했다.

◆좁혀지지 않는 세대 갈등, 가정에서 폭발

전문가들은 세대 갈등과 소통 부재를 메워줘야 할 가정마저 장기간 불황 속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해체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대 갈등이 가정 불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대구에서는 D(26) 씨가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한 아버지(53)가 "술 좀 그만 마시라"고 꾸지람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둔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2월에는 평소 우울증을 앓아오던 E(29) 씨가 취업 문제로 아버지(58)와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로 찌르는 일도 있었다.

최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하루 평균 5건의 가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 자식 간의 사소한 말다툼이 살인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 살인은 2015년 54건, 2016년 53건, 2017년 49건으로 소폭 감소하고 있지만 매년 40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존속 폭행의 경우 10년 새 3배 넘게 증가했다. 2006년 453건이 발생했던 데 비해 2016년 1천533건, 2017년 1천322건, 2018년 1천578건 등으로 최근 3년간 급증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 문제로 세대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데다 과거 가족공동체가 담당해왔던 윤리의식 등의 교육이 무너지면서 불만들이 결국 가정에서 표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성주 김천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깨지는 가운데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오는 마찰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가정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며 "아울러 1997년 이후 외환위기(IMF)를 겪었던 세대들의 경제관념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풍조로 변하면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청년층과 대립하는 것도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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