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갤러리 김춘수 개인전

입력 2019-05-02 10:43:38 수정 2019-05-02 20:21:01

김춘수 작
김춘수 작 'ULTRA-MARINE 1951'

"말로 담을 수 없는 것은 침묵 속에 묻어두어야 한다는 언어의 한계 너머에도 그 무엇이 분명 존재하는 것을 믿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양상으로든지 표현해내려는 역설, 그에 대한 의지가 예술정신의 다른 이름일 게다."

색채, 형태, 질감 등 비언어적 방법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존재를 탐구하고, 그리지 않기 위해 붓을 버리고 손으로 직접 화폭에 물감을 묻히는 화가 김춘수가 14년 만에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의 독백처럼 손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면 신체와 물감이 일치되어 더 이상 신기루 같은 공간에 떠다니지 않고 구체적인 실체로서 화면에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된다. 이때 우리는 물감이 그려내는 형제가 아닌 물감자체를 보게 되며 그것을 통해 그의 몸놀림을 감지하게 되고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비밀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인 김춘수의 작품세계는 1980년대 초반 '사진작업'과 중반의 '창'시리즈, 1990년대 '수상한 혀'시리즈 작업이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무제' 'Sweet Slips' 'Ultra-Marin' '희고 푸르게' 시리즈로 전개되고 있다.

청색을 묻히고 그것을 흰색으로 덮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때론 거칠고 때론 섬세한 선들이 화면을 뒤덮게 된다. 이 작업에서 바름과 지움은 동일하다. 아니 오히려 지움으로써 더 잘 보이게 하는 이 방법은 김춘수가 1980년대 중반 '창'시리즈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에게 창은 주체와 세계가 만나는 장소이다. 그 만남을 좀 더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창에 비친 형상을 지웠다. 이는 주객의 일치로 시각을 초월한 본질 세계와의 만남이다.

30여 년 전 투명한 빛을 머금은 수묵의 느낌을 닮은 서양물감인 블루에 이끌려 시작한 '울트라 마린'은 지금까지 김춘수의 작품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이어 김춘수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1990년대 '수상한 혀'시리즈에서는 그 터치가 더 섬세해지면서 균일하게 반복됨에 따라 그림을 통해 그의 언어의 낯설음에 대한 깨달음이 점점 심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마치 절제된 색채와 단순한 손자국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첫눈에는 단조롭게 보이는 그의 그림은 자주 보게 되면 보다 넓고 깊은 것을 얻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언어가 지닌 다중적 의미의 사유적 요소를 개념적으로 차용하고 동시대 미술에 의문을 던지고 회화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성에 대한 답을 얻고자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Ultra-Marin'시리즈의 200호와 300호 대형캔버스 작업과 소금을 사용한 신작 등이 소개되고 있어 작가 김춘수의 예술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그의 작품을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될 듯싶다. 신라갤러리에서 31일(금)까지 전시한다. 문의 053)4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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