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어느 봄 날, 어머님은 정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 나는 잘 있다! 네 목소리 들으니까 기분이 좋다."
살아생전 어머님과 통화할 때면 자주 듣던 카랑카랑한 말씀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어머님은 기분이 울적해 계실 때도 제 전화를 받으시면 금방 표정이 밝아지신다고 누님들이 어머님께 전화를 바꿔 줄 때면 "엄마 비타민 전화 왔네요"라며 놀리곤 했습니다.
대다수의 우리 부모님 세대 분들처럼 저희 어머님도 슈퍼우먼이셨습니다. 18살에 시집 오셔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농사까지 도맡아 하시면서 살림을 일으키셨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날도 어머님은 밭일을 하시고 칼국수로 저녁상까지 차려 드린 후 출산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칼국수를 좋아하고 술을 마신 다음 날은 칼국수로 해장을 합니다.
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뛰어나셨는데 특히, 두부와 떡은 가게를 차려도 될 정도로 잘 만드셨습니다. 대가족 살림에 농사 일로 쉴 틈이 없으셨을 텐데도 뚝딱 술빵이나 시루떡을 만들어 주셨고, 저희가 시골집에 갈 때면 어김없이 금방 만든 뜨끈뜨끈한 두부를 내 오셨습니다.
저는 막내인데다가 일찍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인지 어머님의 사랑은 더욱 각별하셨던 것 같습니다. 대구로 가기 전까지 어머님은 저를 옆에다 재웠고, 어디 가실 때도 업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친 몸을 달래는 어머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겨울 저녁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윷놀이였습니다. 늦은 밤 시간 저를 업고 어머님이 집을 나설 때면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언짢아 하실까봐 걱정되었는지 "엄마! 할머니 안 들리시게 발뒤꿈치 들고 살살 걸으세요" 했다며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머님은 윷놀이를 정말 좋아하시고 또 잘 하셨습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신명이 나시면 모나 윷을 연달아 하시면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어머님 편의 윷말 담당이었는데 승리 턱으로 얻어먹던 묵과 장독대에서 꺼내 온 김치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님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크고 작은 윷이 대여섯 개나 나왔는데, 어머님과 함께 윷놀이를 자주할 걸 하는 후회가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영화도 좋아하셨는데 시골에 천막극장이 서면 의자까지 들고 저를 데리고 가서 제일 뒤에 앉아 보시곤 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극장에 한번 모시고 가지 못한 것도 가슴이 아프네요.
어머님은 자식들의 교육에도 많은 신경을 쓰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는 늦은 밤에 가나다라와 덧셈, 뺄셈을 가르치셨습니다. 1학년 종업식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까 어머님께서 "하얀 종이 두 장 받았니?" 하고 물으시더군요. 우등상과 개근상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환하게 웃으시면서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중국집에 데려가 자장면을 사 주셨습니다. 대구에서 떨어져 생활하던 자식들을 보러 오실 때면 어머님은 꼭 제가 제일 좋아하던 쑥 시루떡을 해 오셨습니다. 제게는 그 쑥 시루떡이 어머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종합비타민이었습니다. 제가 고시를 준비할 때는 아침, 저녁으로 촛불을 켜 놓고 기도를 드리셨는데 자식을 위한 어머님의 기도는 평생 계속되었고 저에게는 그것이 가장 좋은 비타민이고 든든한 백이었습니다.
전화 한 통에도 그렇게 좋아 하셨는데, 저는 과연 얼마나 어머님에게 비타민이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죄송스럽고, 그립습니다!!
(김승수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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