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강의 생각의 숲] 비밀

입력 2019-05-01 18:00:00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2004년 미국의 예술가 프랭크 워랜 씨는 대중을 상대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도서관, 지하철역 등에 엽서를 비치하고 누구든 자신의 비밀을 써서 보내는 '비밀엽서'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보내온 엽서에는 기상천외한 비밀들이 쓰여 있었다. '수영장에서 몰래 오줌 누는 걸 즐긴다거나, 월급을 더 받기 위해서 수천 명 직원의 월급을 삭감하라고 명령했다거나, 자신이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사람들을 경멸한다거나, 떠날 수 있도록 남편이 나쁜 짓을 했으면 한다거나' 등 몰래 간직했던 비밀들이 엽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젝트는 대 성공이었다.

'비밀엽서'가 각광받은 것은 익명성 때문이다. 비밀은 결코 들키거나 밝히고 싶지 않은 말 그대로 '비밀'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욕구가 '비밀'에 있다. 그게 사람의 욕망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이야기처럼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라도 풀어내야 속이 후련한 것이 비밀이다. 비밀, 영어로 'secret'의 어원은 라틴어 'secretus' 다. '분리하다, 따로 떼어놓다, 선별하다, 배설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어원이 '비밀'의 속성을 다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익명으로 비밀을 풀어놓는 '대나무숲'이 있다. 며칠 전 국회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SNS '여의도옆 대나무숲'에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 패스트트랙으로 시끄러웠던 상황 속에서 고충을 겪었던 불만들이 올라왔다. 보좌진들을 앞장세우고 자기주장을 외치던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다. 심한 몸싸움으로 몇몇 보좌진들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차후에 법적 조치를 당할 수도 있는 형편이니 불만이 클 것이다. 하지만 속앓이만 하는 이들이 비밀 아닌 비밀을 '대나무숲'에 털어놓았다. 이들에게 어쩌면 비밀은 '자신들 입맛에 맞게 따로 떼어서 생각하고 선별해서 배설하는' 구태정치가 진저리 나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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