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어느 교포 신학자가 쓴 '핑계-죄의 유혹'이란 책은 현대인들이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면서도 갖가지 핑계를 되풀이하고 있는 양상이 성경 속 인물들이 살던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구약성서 속의 핵심 인물인 모세조차 신의 계시와 인도에도 불구하고 핑계를 대는 모습을 적시한 게 흥미롭다.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홍길주의 독서 노트 '수여연필'(睡餘演筆)에는 변명과 핑계와 관련한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역사를 기록하는 붓을 쥔 사람에게 그대의 일을 쓰게 한다면, 단지 어떤 일을 했다고 적을 뿐, 일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서 이러쿵저러쿵 둘러댄 핑계까지 잡다하게 기록에 남기지는 않네. 실패한 선인들의 졸렬한 자취인들 어찌 변명이 없겠는가.'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가 올해 1분기에 -0.3% 성장률을 기록하며 외환 위기 이후 최저를 나타냈다. 이렇다 할 대외적인 위기도 없었는데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 같은 마이너스(-) 성적표를 정책의 실패로 보지 않고 대외 경제 여건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을 하더니, 이번에는 근거도 없는 국외 여건을 핑계로 삼은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선시대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219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10년과 문재인 대통령 2년 등 12년을 빼놓고는 전부 일제강점기 또는 독재이거나 극우 세력이 이 나라를 통치해 왔다"는 역사관을 드러냈다. 현재의 어떠한 실책과 실패에 대해서도 일단 핑계를 댈 수 있는 세월의 지평을 200년으로 늘려 놓은 셈이다. 작가 박완서가 소설 '미망'에서도 기술했듯이 '핑계 없는 무덤 없다'지만, 정말 대단한 핑계의 공력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서 밝힌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가수 김건모밖에 없다'는 말이 새삼 관심을 끄는 이유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하는 사람과 조직은 가능한 방법을 찾는 데 진력하고, 실패하는 쪽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찾는 데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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