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판에 스크래치가 생기면 바늘이 튀며 노래가 반복된다. 반복되는 인생 역시 어딘가에 스크래치가 생겨 문제가 발생한 거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은 지루한 반복'이라 말한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판이 튀면 한마디로 X된 거다. 뭔가에 꼴리면 그림으로 별별 짓으로 저지레하며 논다. 그렇게 짓하며 놀다 대구까지 왔다."
봉산문화회관 2층 4전시실 입구 작은 아카이브 공간을 지나 맞은 편 벽면에 있는 그림 한 점.
197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표지를 패러디한 것처럼 보이는 그림에는 어린이 3명이 태극기 대신 '놀자'라고 적힌 깃발을 매만지고 있다. 이른 바 본격적인 '놀자판'이 벌어진다는 예고와 같다. 그랬다. 이곳은 봉산문화회관의 2019기억공작소II '김태헌-놀자'전이 열리는 장소이다.
'놀자'는 이 전시의 제목이자 주제였다. 이어 고개를 돌리면 예기치 못한 그림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머리 위 높은 벽면에는 '나는 거짓말쟁이 화가' '큐빅으로 장식한 여인 누드' 빨간 똥으로 놀고 있는 개의 '똥밭' 등 7점이 걸려 있고 그 아래 세 벽면에 205점의 작품이 꽉 차 있다.
'그림 장사 안하고 어딜 놀러 가냐'라고 말하는 개 그림, 수놓은 꽃과 말의 오브제, 한판 붙자며 '빨간 글러브를 낀 놀자' '파란 캔버스를 칼로 찢는 여자 전사' 등 크고 작은 서랍을 이용해 피규어와 소품거리로 만든 작품은 모두 서로 연결된 있는 듯 의미를 생산해내고 있다.
전시된 작업 중에는 오래된 물건도 많아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와 함께 선보이고 있는 책 '연주야 출근하지 마'는 매일 반복되는 직장인의 삶을 살던 아내에게 인생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며 회사를 그만두게 하고 105일간 동남아 배낭여행을 한 후 쓴 글로 그야말로 '놀자'의 실천이 아닐 수 없다.
김태헌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적 삶을 바탕으로 어떤 잘 보이지 않는 요소를 포착하고 이미지와 언어를 작동시켜 낯선 듯이 조형하는 미술행위를 한다. 마치 일기처럼 작업해온 그의 작은 그림들은 이 시대의 역사성과 시대성, 사회성이 녹아들어 '미술이 무엇인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삶과 예술이 결합이 가능한가?' 등을 자문하고 있다.
김태헌의 이 같은 '비딱하게 바라보기'는 이미 삶과 떨어진 주류 미술을 따르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그 차이점을 새로운 미술 가치의 가능성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민중미술, 공공미술, 드로잉, 여행스케치, 동화책 그림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은 기존 관행적인 회화들과는 다른 사실적 조우로서 시각체험을 통해 상상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관객 스스로 이미지에 대한 감수성과 의미를 찾아내는 태도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전시는 6월 30일(일)까지. 문의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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