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서커스'는 고대 로마가 시민들에게 제공한 식량(빵)과 오락 및 휴식거리(서커스)를 가리키는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쓰이는 표현이다. 포퓰리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시민들이 나태해졌는데도 어떻게 1000년 동안 대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로마뿐 아니라 변방의 속주에서도 같은 수준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런데 왜 멸망한 것일까? 그리고 멸망 뒤에는 무엇을 남겼을까?
일본 유수의 건설회사 다이세이의 건설 토목 책임자로 세계적 교각으로 평가받는 세토대교 등을 설계·시공한 나카가와 요시타카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풀어 로마 역사를 토목·건축의 관점에서 흥망과 쇠망을 분석하고 있다.
◆2000년 전 인구 100만 대도시
18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는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지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산업화를 이룩한 영국이 1820년에 100만 명이 넘는 최초의 근대 산업도시를 선보인 이래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는 전세계를 통틀어 1900년에도 11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로마는 2000년 전에 인구 100만 도시를 운영하고 유지했다. 고대 로마는 도시의 물 수요를 채우기 위해 많은 수도를 부설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높은 장벽의 성곽도시를 구축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필연적으로 상수도 정비가 필요해졌다. 흑사병 등 전염병을 막기 위해 위생적인 배설물 처리가 과제가 되었으므로 하수도 정비도 불가결해졌다.
◆현대 시설 못지않은 상·하수도
로마인에게는 '샘 신앙'이 있었다. 상수원이 아무리 멀어도 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샘에서 취수한 물은 산에는 터널을 뚫고 얕은 계곡에는 수도교를 놓고 깊은 계곡에는 연통관을 설치해 도시의 성벽까지 옮겼다. 로마 지하 수도의 원형이라 불리는 '카나트'는 오늘날 이란의 건조 지대에 건설됐는데, 수직으로 파내려간 갱도는 30~50m 간격이었고 가장 깊은 곳은 300m에 달한다. 길이는 산간지역에서는 50~500m였지만 긴 곳은 70㎞에 달했다. 로마에는 돌과 벽돌을 아치 형태로 쌓은 하수도인 클로아카가 설치됐다. 하수도는 수많은 지선을 갖고 공공 욕장, 공공 화장실, 개인 주택 등 폐수와 빗물을 티베리스강으로 방류했다. 로마에는 공공화장실이 기원전 33년에 1000곳에 달했고 수세식이었다.

◆모든 길 통하게 만든 로마 가도
프랑스 작가 라 퐁텐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로마제국 전역 북으론 영국 런던, 남으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동으론 티그리스강변 크테시폰, 서로는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15만㎞에 이르는 로마 가도가 건설됐다. 그중 8만㎞는 간선 포장도로다. 그 길들이 로마시로 통해서 국토 방위와 로마제국의 번영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현재 등재된 세계유산 도로 구조물로는 도로교 5곳, 교량 5곳, 개선문 8곳이 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는 로마 때 정비된 포장 도로망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인도, 차도가 분리돼 있고 횡단보도도 있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터널도 3곳 남아 있다. 푸테올리와 네아폴리스 두 도시간 산 밑을 뚫은 터널의 길이는 700~1000m로 장대했고 마차나 수레가 서로 비켜갈 수 있는 4~6m 폭도 확보돼 있다.
◆포퓰리즘의 효시 '빵과 서커스'
고대 로마는 기원전 123년부터 시민들에게 저가 또는 무상으로 식량과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식량난이나 폭정이 극에 달하면 내란이 일어난다. 배고픔이 해결되고 오락과 휴식이 제공되면 불평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거의 사라진다. 시민들에게 밀을 배급한 것은 공화정 로마 때인 기원전 2세기 후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에서 비롯됐다. 그라쿠수 형제는 자작농 몰락에 따른 빈민구제를 위해 국가가 일정 물량의 밀을 사들여 로마시민에게 시가의 절반 가격으로 배급하는 곡물법을 시행했다. 이런 개혁정책은 훗날 포퓰리즘의 효시가 됐다. 로마제국에는 원형 극장 475곳, 원형 경기장 209곳, 전차 경주장 77곳 등 많은 서커스 시설이 있다. 로마인들은 유독 목욕을 좋아해 대형 공공 욕장이 11곳, 소형 공공 욕장이 900곳 있었다. 이런 욕장은 황제의 명으로 건설돼 권위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선심을 얻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을까
로마의 멸망 원인에 대해선 몇가지 설이 있다. 우선 게르만족의 대이동설이다.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선포해 이교와 이민족 멸시정책이 쇠락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쾌락의 대명사인 목욕탕설도 있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너무 좋아한 만큼 결국 나태해지고 향락적인 생활습관을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납중독설도 있다. 수도 구축에 납관을 사용해 납이 섞인 물을 마시면서 불임을 유발, 인구가 격감했다는 논리다. 로마시민들의 지나친 사치와 방탕, 그리고 난잡한 성생활 때문이라는 극단적 타락설도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만연한 쾌락주의가 로마 멸망의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 향락 추구는 이미 건국할 시점부터 당연한 생활습관이었다. 로마의 쇠락은 제국의 거대한 규모가 가져온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결과로 보고 있다. 번영은 부패를 촉진시키고 정복의 범위가 넓을수록 파멸의 압력은 늘어난다는 것이다. 330쪽 1만8천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