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백세시대 (百歲時代)

입력 2019-05-07 09:29:33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자고로 백세시대다. 몇 일전 일본 지방선거에서 84세 구청장과 91세 시의원이 당선되었다. 특히 35세의 손자 뻘 후보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고령의 구청장은 유세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곳곳을 누비는 선거운동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전략은 '고령자의 별'이라는 호평을 이끌어 냈고, SNS 등으로 무장한 젊은 후보자에 맞설 수 있었다. 유권자들은 젊음의 패기보다 고령의 노련함과 경륜을 택했다. 91세 최고령 시의원 역시 매일 10회 정도 거리연설에 나설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결국 관건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노령 기를 맞이하느냐에 있다.

"어디가 아프세요?" 응급실 인턴이 백발노인에게 재차 큰소리로 묻고 있다. 귀가 어두운 노인은 가슴을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여전히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있을 뿐이다. 작은 체구에 마른 체형으로 미루어 보아 오랫동안 만성질환을 앓아온 듯 하다. 심전도 검사는 응급시술이 필요한 급성심근경색증이 발생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공원을 지나던 행인에게 쓰러진 채 발견되어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는 보호자가 없는 상태로 치료결정이 늦춰지고 있다. 모든 의료진이 시술을 위해 대기하는 동안 즉시 치료를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환자의 아쉬운 일분일초가 흘러가고 있다. 이후 어렵게 연락된 젊은 보호자는 허탈하게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시술을 거부했다. 이런 경우 환자의 동의를 얻어 치료를 결정 할 수도 있지만,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자식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환자가 선뜻 시술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2019년 대한민국 고령화 사회의 민낯이다. 의료계 역시 고령화 사회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환자는 뒤늦게 나타난 배우자의 동의로 우여곡절 끝에 시술을 받고 생존했다. 하지만,고령의 배우자도 몸이 불편한 환자이면서 홀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노노케어. 노인환자가 노인환자를 돌보는 현실이다.

한국의 고령화가 OECD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50년 전체 인구의 38%를 차지할 전망이며, 85세 이상의 비중이 2021년에는 10%를 넘어설 전망이다. 노인인구의 증가에 따른 만성질환자의 증가는 또 다른 사회적 부담이다. 2015년 만성질환자는 전체 28.5%이며, 2개 이상 만성질환을 가진 복합만성질환자가 전체의 약 8%에 달했다. 이에 따른 의료비 증가가 전년대비 8%를 넘었다. 정부는 의료취약계층에 대한 방문진료를 골자로 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및 '지역사회 통합 돌봄' 사업을 확대해 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노인문제를 요양서비스 및 복지서비스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급성 중증 및 응급질환에 대한 치료는 노인환자 개인의 몫으로 넘긴다면 지금 같은 의료현장의 혼란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봄날, 젊은 시절이 있다.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는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명의 이치'다. 노인 환자가 더 이상 소외되지 않도록 만성질환뿐만 아니라 사회적 부담이 큰 급성 중증 및 응급질환도 포함하는 보건, 의료, 복지 통합케어로의 방향 설정이 시급하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