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톨릭대 병원에서 만난 방하나(15·가명) 양은 혈액 투석 중인 방현석(53·가명) 씨의 기저귀를 능숙하게 교체하고 있었다. 하나는 지난 11일부터는 일주일이 넘게 등교도 못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자석같이 붙어 다니던 부녀지간이다. 항상 든든하고 친구 같던 아빠가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위중하다는 것을 아직 하나는 믿을 수가 없다.
◆ 당뇨 합병증 탓에 시각장애 2급, 앞 거의 안 보여
방 씨는 지난 2011년부터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지만 그전부터 B형간염, 만성신부전증을 동반한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증상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고혈압과 신장 기능 이상으로 지금은 매주 3회 이상 혈액 투석을 해야만 살 수 있다. 그새 시력은 장애 1급을 받을 정도로 나빠져 이제는 가까이 있는 물체도 뿌옇게만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주로 공사장에서 고철을 가지고 와 고물상에 파는 일을 했다. 비정기적인 일감에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고 저축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딸과 단둘이 오순도순 정겹게 살았다.
시력이 나빠져 더는 일을 하기 어려워지자 2년 과정의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아버지로써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이런 방 씨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2월 갑작스런 뇌경색이 찾아왔다. 팔과 다리에 마비증세가 심하고 말도 어눌해진데다 혼수상태가 지속되면서 며칠간 깨어나지도 못했다. 하나는 "아빠가 예전부터 육식을 즐기고 음식을 무척 짜게 먹었다"며 "나도 짜게 먹는 편인데 음식 때문에 아빠가 병을 얻은 것 같다"고 가슴 아파 했다.
◆이혼한 전 부인, 딸이 병시중 들어
방 씨는 하나가 세 살 때부터 혼자 딸을 키웠다. 부부 사이는 원만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결국 갈라서기로 합의했다.
한 부모 가정이었지만 하나는 더없이 좋은 아빠를 만나 불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방 씨는 하나에게 아빠이자 엄마, 언제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다.
낚시, 동물 키우기, 요리 등 같은 취미가 많은 부녀는 언제나 붙어 지냈다. 앞으로 마당 있는 집에서 리트리버 강아지를 키우며 같이 살자고 약속했던 부녀는 지금 기약 없는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는 "같이 낚시를 하러 자주 다녔다. 아빠가 도리뱅뱅이를 참 잘 만들었는데 빨리 일어나서 다시 같이 나들이를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나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엄마는 오래전 갈라섰던 전 남편 병간호를 돕기 시작했다. 엄마는 "경제적으론 무능력했지만 딸한테 만큼은 세상없는 사람이다"며 "하나 아빠 상태가 워낙 심각하니 친척들이 조심스레 장례준비를 권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하나가 나서 '조금만 기다려달라, 해볼 때 까지는 해봐야 할 것 아니냐'고 설득할 정도로 강한 아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하나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방 씨는 최근 깨어나 어눌하게나마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집중치료실에서 나와 이제는 재활병원으로 옮길 정도로 증세가 호전됐다.
문제는 뇌경색 치료비와 생활비 마련이다. 방 씨 부녀는 현재 120만 원 남짓한 정부보조금 외에는 수입이 없는 상황인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취재 내내 시종일관 씩씩했던 하나는 초점 잃은 아빠의 눈을 보면서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나는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이번에 생사의 고비를 넘긴 아빠 병간호를 하면서 앞으로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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