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 스케치] 보복과 증오의 끝은?

입력 2019-04-22 18:00:00

복수만큼 달콤하고 짜릿한 욕망은 없다. 대중의 분노를 사는 인물이나 자신을 모욕한 상대방이 서서히 파멸해 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그래서 '내가 복수한 뒤라면 세상은 사라져도 좋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누구나 용서보다 복수 내지 보복에 열광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모두 '잠재적 복수자'로 규정한다.

과거 국가가 개인의 복수를 법으로 인정한 곳이 있었다. 일본 에도시대에 복수를 의미하는 '가타키우치'(敵討)는 무사의 특권이었다. '무사가 복수를 하려면 막부에 청원해 허가를 받아야 했다. 청원이 막부의 공식 장부에 기록되면 언제 어디서나 합법적인 복수를 할 수 있었다. 복수자는 친족·동료의 환송을 받으며 복수행을 떠나, 복수할 대상이 사는 곳에 도착하면 그 지역의 행정 책임자에게 신고해야 했다. 복수는 일대일 결투보다는 상대방이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일본의 무사도, 구태훈 지음〉

국가가 복수 행위를 제도의 틀에 묶어둔 것을 보면 지극히 일본스럽다. 무가 사회라고 해도 무차별 복수는 허용되지 않았고, 몇 가지 금도가 있었다. 복수자는 피해자의 아랫사람이어야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동생은 형의 복수를, 가신은 주군의 복수를 할 수 있을 뿐, 그 반대는 불법이었다. 복수는 1회에 한한다는 점도 중요한 불문율이었다. 이 금도가 없다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규정을 일일이 지켜야 하는 '관제 복수극'은 관객의 흥미를 떨어뜨리긴 하지만, 복수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서양 영화에는 귀족·신사 등이 일대일로 결투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실제로 16~19세기 초반까지 유럽·미국에서는 자신이나 가문의 명예가 손상됐을 때 결투를 통한 복수가 관습적으로 행해졌다. 총이나 칼로 하는 결투이긴 했지만, 꼭 상대를 죽이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결투 예절의 교과서인 '결투 규정'에는 여러 가지 룰이 나온다. '결투 전이나 중간에 진심 어린 사과가 있을 경우 분쟁이 해결될 수 있고, 입회인을 통해 화해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손이 떨릴 정도의 부상이 있으면 그날의 결투는 종료한다.'

그 시대에도 서양이든 일본이든 복수에는 금도와 불문율이 존재했다. 절제되지 않은 복수는 용인되지 않았고, 패거리로 싸우는 복수는 범죄로 간주됐다. 언제나 분노에 휩싸여 복수를 감행하지만, 막상 복수가 끝나고 나면 허탈함과 자괴감에 빠지는 것은 옛날이나 현재나 마찬가지다.

가장 이상적인 복수자로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슈퍼히어로를 꼽는 시각도 있다. '슈퍼히어로는 법, 정치 등이 정의 구현에 실패할 때 홀연히 나타나 범죄자를 응징한다. 이들은 정확히 얼마만큼의 보복이 필요한지, 언제 멈춰야 할지 귀신같이 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복수의 심리학, 스티븐 파인먼 지음〉

슈퍼히어로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집권 세력이 적폐 청산, 정의 구현의 기치를 든 지 2년이 됐지만, 언제까지 칼을 휘두를지 기약이 없다. 집권 세력은 '구악'을 일소하겠다고 했고, 반대편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박한다. 문제는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공공연하게 '복수'를 다짐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 보복의 악순환이라는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훗날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고 현 집권 세력이 정권을 잃는다면 한 가지만은 단언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감옥까지는 몰라도 검찰에 불려 다니는 치욕은 피할 수 없다. 보복과 증오에 영원한 승자가 있을 수 없다. 칼을 쥔 자가 내려놓고 악수를 청하는 방법밖에 없다. 보복과 증오는 원초적 욕구의 발산이지만, 용서와 화해는 성숙한 어른의 행동임을 인식했으면 좋으련만….

박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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