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엇갈리는 반응…여성계 '환영', 종교계 '우려'

입력 2019-04-11 18:41:16 수정 2019-04-11 22:56:43

세대에 따라서도 반응 엇갈려

낙태죄폐지반대국민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판결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죄폐지반대국민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판결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규정이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리며 사실상 낙태죄 위헌 판결을 하자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대체로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여성계 "낙태죄 폐지" 환영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11일 성명을 통해 "헌재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며 "여성의 삶을 억압하던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들 모두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여성단체는 "이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지난 헌재 판결과 비교하면 확실히 진일보한 판단"이라며 "임신 중단 여부를 여성에게 맡긴 점이 의미 있다"고 했다.

임신 주수에 따라 제한적으로 낙태가 허용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법 개정은 어디까지나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관점이 아닌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은희 미혼모협회 I'm MOM(전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지금까지는 낙태가 불법이라 미혼모들이 낙태 고민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을 창구가 없었다"며 "단체 차원에서 공개적인 상담창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종교계 "생명권 자체는 부정할 수 없어" 우려

종교계는 이번 헌재 결정이 자칫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박병욱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는 "생명은 근본적인 규범이고, 이에 대해 타협을 하기 시작하면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이미 낙태가 비일비재한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법적으로 살인을 방조할 수 있게 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박 목사는 또 "낙태에 대한 법적 처벌이 없는 서구권에서도 생명의 절대적 가치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종교계가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면 모두 비웃는 무서운 사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성명을 내고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는 "태아를 포함한 생명의 존엄성과 여성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지만 후속 입법 절차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관홍 신부는 "태아에 대한 생명존중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교황이 늘 생명문화를 강조하는데, 죽음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대체로 적절한 판결"

의료계는 대체로 "사회 분위기에 적절한 판결이 나왔다"는 입장이다. 지금껏 피임에 실패한 많은 산모가 낙태가 위법이라는 이유로 속앓이만 하다 남몰래 아이를 낳고 버려 죽음에 처하도록 하거나, 암암리에 찾은 병원과 서로 합의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시술받는 등 부작용이 컸다는 이유다.

한 산부인과 의원 원장은 "동료 의사들 가운데 한 여성의 부탁에 따라 낙태 시술을 해줬다는 이유로 그의 옛 애인에게 고발당해 처벌당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남녀가 성관계한 결과로 두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는데도 남성은 빠져나가고 여성과 의사만 피해자가 되는 부당한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의사들이 낙태 시술을 원치 않을 수 있다는 반발도 제기된다. 의사 스스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윤리관에 따라 낙태를 기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낙태가 불법인 현재는 여성이나 천주교 신자인 의사 사이에서 산모의 시술 요청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김병석 대구시의사회 의장은 "태아의 생명 못지않게 산모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 다만 판결을 계기로 급하게 법 개정과 낙태 허용 시기를 규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이 뜻을 모아 내년 연말까지 법 개정 방안을 신중하게 논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시민 반응

일반 시민들은 세대에 따라 헌재 결정에 상반된 반응을 내놨다. 대학원생 최유진(25) 씨는 "낙태가 죄가 아니라는 헌재 결정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며 "지금에 와서 낙태죄의 위헌성이 인정된 것에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씁쓸하다"고 했다.

최 씨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아닌 위헌 결정을 했어야 한다"며 "내년 말까지 유예기간 동안 혹시라도 낙태죄로 처벌받게 될 여성들은 어떻게 되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두 자녀를 둔 한지이(53) 씨는 "젊은 여성들이 생명을 너무 쉽게 생각할까봐 우려스럽다"며 "어느 정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씨는 "시대 변화에 따라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법 개정 과정에서 아이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폐지공동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죄폐지공동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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