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성류굴 암각문 삼국·통일신라·조선 등 다양한 시대에서 차례로 새겨져

입력 2019-04-11 10:44:11

동굴 내 암각문은 국내 최초 발견
신라 화랑의 수련 장소 등 당시 시대상 읽을 학술 가치 높아

울진 성류굴에서 발견된 암각문.
울진 성류굴에서 발견된 암각문. '정원 14년 무인 8월 25일 범렴행(범령이 다녀갔다)'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울진 성류굴 암각문(본지 지난 11일 10면 보도)이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시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성류굴이 수련 장소이자 명승지로 활용됐다는 의미이며, 당시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학술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11일 "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류굴'에서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암각문 30여 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암각문은 울진군이 지난달 21일 성류굴 내부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정비조사를 벌이던 중 입구로부터 230여m 안쪽에 위치한 여러 개의 종유석(석주·석순)과 암벽 등에 새겨진 것을 처음 발견했다.

일반에 공개된 지역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며, 동굴 안에서 암각문이 발견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종유석 등에는 '정원 14년(貞元 十四年)'이라고 새겨진 글자 3개를 포함해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임랑(林郞)', '소(우, 牛)' 등 다수의 화랑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등 학계 전문가들은 세 차례 추가 조사를 펼쳐 시기를 기록한 '신유년(辛酉年)'과 '경진년(庚辰年)' , 통일신라 시대 관직명인 '병부사(兵府史)', 화랑 이름인 '공랑(共郞)', 승려 이름 '범렴(梵廉)', 조선 시대 울진 현령 '이복연(李復淵)' 등 30여 개의 암각문을 발견했다.

특히, '신유년(辛酉年)'과 '경진년(庚辰年)'과 같은 간지 연대를 나타낸 글자는 국보 제147호인 '울산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을사년(乙巳年·서기 525년·신라)'과 비슷한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798년에 새긴 '정원 14년(貞元 十四年·원성왕 14년·통일신라)'과 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명 등도 발견돼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조선 시대까지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오가며 계속해서 글자들을 새긴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암각문은 석주, 석순, 암벽 등에 오목새김(음각) 돼 있으며 글자 크기는 다양하다.

대부분 해서체(楷書體·자형이 똑바른 한자 서체)로 쓰였으나, 행서(行書·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도 일부 가미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발견된 암각문은 정확한 방문 시기와 방문자가 표시된 것이 매우 의미깊다.

실례로 신라 시대 시기명과 화랑, 승려들의 이름이 다수 적혀있는 점으로 미뤄 성류굴이 화랑들이나 승려 등이 찾아오는 유명한 명승지였으며, 수련 장소로도 활용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고려 말 이곡(1298~1351년)이 지은 '동유기(東遊記, 1349)'에서 처음 나오는 '장천(長川)'이라는 용어가 그동안 '긴 하천'으로 해석됐으나 이번 성류굴에서 똑같은 명칭이 발견되면서 울진에 있는 하천인 '왕피천'의 옛 이름일 가능성이 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 고대사 자료가 희소한 상황에서 이번에 확인된 다양하고 수많은 명문은 신라의 화랑제도와 신라 정치‧사회사 연구 등을 위한 중요한 사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 각석 명문에 대한 실측과 탁본, 기록화 작업 등 전반적인 학술조사와 함께 동굴 내 다른 각석 명문에 대한 연차별 정밀 학술 조사와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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