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일, 헌재 판결 앞둔 낙태죄…이번에는 어떤 결과 나올까?

입력 2019-04-09 22:00:00

법조계 “낙태죄 변화 필요” …여성계 “낙태 바라보는 관점 바꿔야”
반대 단체 “태아 생명, 여성 자기결정권에 포함 안 돼” …OECD 국가 낙태죄 폐지 증가 추세 뚜렷

11일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둔 가운데 낙태죄 폐지 찬반 여론도 뜨겁게 불붙고 있다.

7년 전인 2012년 헌재는 4대 4로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성 재판관이 2명으로 늘어나는 등 재판부 구성이 달라진 데다, 여성단체 및 일반 시민들까지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폐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만큼 위헌 혹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즉시 효력을 상실하면 법적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생길 수 있어 법 개정을 위해 시한을 두는 것이다.

헌재는 또한 합헌 혹은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등 다양한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다. 법조계는 "변화한 시대 분위기상 합헌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고, 반면에 당장 낙태를 전면허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므로 국회에 입법을 촉구하는 방식의 주문이 나올 것이다"고 전망하고 있다.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반대 생명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반대 생명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계와 종교계 찬반 논란

여성계는 산모를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의 낙태죄 존치는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 등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침해한다는데 한목소리를 냈다.

김은희 미혼모협회 I'm MOM(전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 폐지에 찬성했다. 김 대표는 "독일에서 낙태는 여성의 권리"라며 "독일 여성들은 임신갈등상담소인 프로파밀리아(pro-familia)같은 공식 상담소에서의 상담을 거쳐 수술이 가능하다. 단 임신중절을 결정한 여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이 보장된다"고 전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현재 낙태는 죄라는 틀 안에서 임신한 여성들에 대한 아무런 사회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가 여성을 인구 조절의 도구로 여기는 관점을 바꿔 '돌봄의 사회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여론도 강하다. 자궁 속 아기를 여성과 별개의 생명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 반대 단체 연대체인 생명대행진 코리아는 최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자궁 속 아기(배아와 태아)가 여성 몸의 일부라는 주장은 명백한 오류"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타인인 아기를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폐지반대 생명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폐지반대 생명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에선 "변화 불가피" 전망도

법조계는 낙태죄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데 주저하면서도 낙태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을 표했다. 대구지법 한 판사는 "사형죄나 낙태죄는 판사들끼리도 언급을 꺼리는 주제"라며 "다만 느낌상으로는 폐지로 가닥이 잡힐 것 같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세계적으로도 위험성이 없는 임신 초기에는 낙태를 인정하는 게 대세다. 현행법대로 딱 잘라서 금지하는 견해는 폐지되는 게 맞다. 이번에는 종전과는 다른,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하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지역 한 변호사는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처벌 규정은 없애야 한다고 본다. 낙태를 반대하는 것과 처벌하는 건 다른 문제이고 이를 동일 선상에 놓을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며 "과태료 등 행정처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낙태죄에 대한 세계적 추세

우리나라에서 임신한 여성 당사자에게 죄를 묻는 낙태죄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일본 형법의 도입에 따라 처음 생겨났다. 당시 일본 형법은 임신한 여성이 약물이나 다른 방법으로 낙태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했다.

이 영향으로 해방과 정부수립 뒤 만들어진 형법에도 낙태죄가 포함됐다. 이것이 사실상 우리나라 낙태죄의 모태다. 이후 1973년 제정돼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개정된 적 없는 '모자보건법' 14조를 통해 낙태를 허용하는 '특수한 사정'에 대한 예외 규정이 마련됐다. 임신 24주 이내에 한해 성폭행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모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클 때만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토록 한 것이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5개국은 낙태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반면 아이슬란드, 영국 등 4개국은 사회경제적 이유를 제외하면 낙태를 할 수 없으며, 한국을 비롯한 아일랜드, 이스라엘, 폴란드 등 6개국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가 불가능하지만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낙태죄를 폐지 의견이 힘을 얻으며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국민투표로 수정헌법을 발의해 임신 주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안이 발의된 상태다. 폴란드의 경우에는 극우집권정당인 '법과정의당'이 낙태전면금지법을 발의하자 수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검은 시위'를 벌여 해당 법안이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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