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애(54·가명) 씨의 12평 남짓한 방은 각종 약봉투로 그득했다. 그는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오른쪽 다리를 절기 시작해 지체장애 4급을 받았다. 10년 전부터는 뇌하수체기능항진증과 이로 인한 각종 합병증에 시달려 왔으며, 지난 1월에는 파킨슨병으로 뇌병변장애 3급 판정까지 받으며 지금은 12종류가 넘는 약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29번이 넘는 수술을 한 김 씨는 일은커녕 정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한 몸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자꾸만 악화되는 건강상태와 생활고에 절망은 우울증으로 번졌다. 김씨는 단칸방에 우두커니 누워 있으면 5년 넘게 연락이 끊긴 아들과 딸 생각이 절절하다고 했다.
◆ 어지러워 자주 쓰러졌는데 알고 보니 파킨슨병
김 씨는 지난해 9월 집 화장실에서 균형을 잃고 쓰러져 골반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뼈가 제대로 붙지 않아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혼자서는 용변을 해결하지 못해 기저귀를 차야 한다.
김 씨는 지난 1월, 담당 의사의 권유로 뇌 검사를 받은 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신경 세포들이 죽으면서 뇌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손발이 자주 떨리거나 균형을 잡기 어려운 등 파킨슨병으로 의심할만한 증상을 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그저 저혈압에 어지럼증이 온 줄로만 알았다. 김 씨는 평소 워낙 자주 넘어진 탓에 골반 부상 전에도 허벅지와 무릎 골절 골절 등 5번의 수술을 받았었다.
사실 김 씨는 또 다른 뇌 관련 질환인 뇌하수체 기능항진증을 오랜 기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뇌의 호르몬 분비기관인 뇌하수체에 종양이 발생해 각종 호르몬 분비가 과잉되는 희귀성 질환이다.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다보니 갑상선과 자궁에 이상이 생겨 연거푸 수술을 받았고, 얼굴과 손발이 커지는 말단비대증 증상도 앓고 있다. 요즘은 얼굴 근육 경직이 심해져 말도 급속히 어눌해지는 상황이다.
현재 무엇보다 김 씨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감이다.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매달 받는 기초생활 수급금 60만원으로는 엄두도 못낸다. 그는 "뇌가 아프면서 생기는 수많은 잔병들에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우울증이 심했다"며 "구청에서 연계한 심리치료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들 생각에 버텼다"고 했다.
◆원활하지 못했던 결혼생활, 자식 제대로 못 지킨 것 미안해
김 씨가 혼자 산지도 어느덧 18년. 남편은 잦은 외도와 함께 술만 마시면 김씨에게 욕을 하고 손찌검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을 하는 것이 김 씨의 일상이었다.
어느날 그는 점점 더 심해지는 무차별 폭력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집을 뛰쳐나왔다. 홀로 식당 설거지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딸을 애타게 찾는 홀어머니와는 돌아가실 때까지 인연을 끊고 살았다. 그때는 친정식구들 앞에 비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뒤늦은 죄스러움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10년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다.
현재 김 씨는 각종 병마에 몸을 가누지도 못할 지경이지만 철저히 혼자다. 아들(33)과 딸(31)은 연락이 끊긴 지 5년도 넘었다. 대구와 구미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자식 얼굴이 떠오르지만 차마 연락을 취해볼 용기가 안 난다. 요즘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뼈에 사무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씨는 "딸을 보고싶어하는 어머니를 외면한 죄, 아이들이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그 죗값을 지금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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