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피었다. 진달래로 산이 홍조를 띠면 대지는 술렁인다. 새봄이 궁금하여 씨앗이 눈을 뜨고, 사방으로 꽃불 번진다. 나뭇잎들도 쏟아져 나와 재잘댄다. 모두가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인 듯 새롭다. 진달래꽃 역시 어릴 적 고향 마을 앞산과 뒷산에 피던 진달래와 같은 모양과 빛깔이지만 분명 그때의 그 꽃은 아니다. 작년에도 보았던 바로 앞의 진달래도 오늘 처음 조우하는 새 꽃이다. 봄마다 설렘으로 다가오는 꽃처럼 최춘해 선생님의 첫 동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도 오래된 새 책이다.
이 동시집은 1967년에 세상에 처음 나왔던 모습 그대로 2017년에 새로 나왔다. 최춘해 선생님께 동시를 배운 제자가 보은의 선물로 복고 판으로 펴낸 것이라 의미가 더 아름답다. 동시는 단순히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누구도 어린이였던 때가 없지 않았음을 상기하게 한다. 결국 어른들도 호기심과 꿈으로 순수했던 동심의 초석을 딛고 오늘을 산다. 동시는 우리 마음 속 순수를 건드리는 들숨이다.
그래서일까 시집은 독자를 타임머신에 태워 친구들과 진달래꽃 따 먹던 시골 마을, 산과 들, 학교 운동장과 교실에서 마냥 신나게 뛰놀던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매끄럽지 못한 인쇄술, 오탈자, 한글맞춤법의 변화도 경험하게 한다. '새끼 한 가닥으로/ 기차를 만'들어 달리는 아이들이 보이고, '비가 오는데… 그네가 내 차지다'고 책보를 맨 채 그네를 타는 분이도 있다. '몽당연필', '뻐스' 등의 정다운 시어가 미소 짓게 한다.
봄의 대지처럼 시가 살아 움직이며 미래를 꿈꾸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때를 기억하게 한다. 섬세하고 다정하게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로 이끌며 나를 반성하게도 한다. '새싹이 눈을 감고/ 강아지처럼 젖줄을' 빠는 '이른 봄'. '쪼록 쪼록/ 가지에 물오르는 소리/ 토독 토독 눈트는 소리를' 듣는 '봄비'. '오월 아침' '지구의 맥박 소리.'는 '산마루에 선 나도/ 한 마리 새가' 되게 하고, '시계'가 셈을 세면 '지구가 돌지 않곤/ 배겨나질 못합니다.'
시집은 겨울마저도 힘차고 따뜻하게 한다.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산 작가의 인자한 미소도 보인다. '엎치락 뒤치락 / 뛰고 궁굴고.' '눈치를 살피지 않는… 자라는 교실'이 흐뭇하다. 시인은 천성이 봄의 대지(흙)와 같아서인지 시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머니와 자라는 아이들로 살아난다. 또, 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병아리가 자라고,/ 아기가 자라고/ 새싹이 자라는 건/ 정말은 시가 자라는 것,//시를 만들려고/ 지구가 돈다,'고 한다.
진달래꽃 깨물면 쌉싸래하고 달짝지근한 향기가 입안 가득히 퍼진다. 봄맛이다. 있는 그대로는 향기도 없는 듯 그저 순한 진달래꽃이 떼어져 화전이나 술 등으로 거듭나면 매혹적인 본래의 향을 발한다. 여운이 감미롭다. 흙의 시인 최춘해 선생님의 첫 마음이 담긴 이 책이 진달래꽃 맛과 닮았다. 참 스승의 모습을 동시로, 삶으로 보여주는 작가와 존경을 표현한 제자의 마음에 필자는 저절로 발그레했다.
강여울 학이사 독서아카데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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