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강의 생각의 숲] 울지 않고 날지 않는 새처럼

입력 2019-04-03 19:00:00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스물일곱 살부터 울지 않고 날지 않는 새처럼 산 시인이 있다. 제주도 4·3의 역사를 가슴에 품고 진실의 폭탄을 제조한 시인은 30여 년 숨죽여 살았다. 시인에게 제주도는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이고 한라산은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이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3·1운동 기념식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목숨을 앗아가면서 시작된 제주 4·3사건. 시인은 제주 사람 김봉현 씨가 일본으로 밀항한 후 써내려간 '제주도 피의 항쟁사'를 토대로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썼다. 그 일로 혜광고 후배인 박종철 열사처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했다. 고교 시절, 안도현 시인과 함께 학생 문사로 이름을 알리고 문학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갈 만큼 장래가 촉망됐던 시인에게 시집 '한라산'은 '언제나 진실만 말해야 한다는 멍에였고 천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라면 부끄럽지 않고 비겁하지 않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시인은 스물일곱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미국 펜클럽 회장인 수전 손탁 여사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된 시인은 '한라산' 2집을 준비하기 위해 제주도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같은 인간의 짓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만행'이자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지를 철저하게 보여준' 4·3의 진실을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확인한다. 시인은 너무 끔찍해서 글을 쓸 수 없다며 절필한다. 그리고 10년 만에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를 펴내며 다시 작가의 길에 들어선 시인은 말수를 줄이며 산다. 그의 말처럼 세상은 여전히 모두가 상주여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그 가해자들의 죄를 제대로 묻지 않기 때문이다. 4·3특별법 개정안이 부결된 후 맞은 4·3사건 71주년, 시인은 여전히 울지 않고 날지 않는 새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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