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영주의 봄'…걷고 싶은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사뿐∼

입력 2019-04-03 17:30:00 수정 2019-04-12 00:08:17

미세먼지철 견녀내자 비로소 봄... 7일(일) 영주마라톤대회 달리고 영주 힐링여행도 하고
차분한 도시 분위기... 시가지 외곽으로 부석사, 소수서원, 무섬마을 등 줄줄이 힐링코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부석사 가는 길에 세계유산 등재 노리는 소수서원까지

영주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 여고생처럼 신나게 웃고 좋아하는 모습에 완연한 봄이 묻어난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영주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 여고생처럼 신나게 웃고 좋아하는 모습에 완연한 봄이 묻어난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지금까지 이런 건 없었다'고 말하는 게 유행이라지만 유난스러운 미세먼지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미세먼지철'을 집어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길기도 길었다. '장마철'에 버금갈 만큼이다. 우산을 들고 다녀야하는 장마철이 있다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하는 미세먼지철이었다.

미세먼지철을 견뎌내니 우리가 알던 봄이다. 4월에 들어서자 완연하다.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절기인 청명(淸明)을 지난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은 사람에게도 통한다. '속담적 허용'에 따른 특유의 과장이 있을지언정 빈말은 아닌 것이, 아무리 운동을 하지 않던 이라도 1년에 한두 번쯤은 격하게 움직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즈음이다. '헬스장 자선가의 법칙'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마침 '청명'이라는 절기와 '청명'이라는 단어가 어울려 맑아지는 기운의 도시 영주에서 7일(일)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말이 마라톤대회지 조깅마니아들의 단체 뜀박질로 이해하면 알맞다. 걷는다한들 뭐라는 사람도 없다.

청명한 하늘과 소백산을 배경삼은 영주는 어디든 '봄'이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에서, 소수서원 솔숲에서,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한참을 본다. 한국 정신의 수도를 자처하는 영주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한참을 썼다 지웠다 설레는 마음만 남긴다.

'그냥 보면 아는데 뭘, 영주야, 또 만나자!'

영주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 비껴다리를 앞에 두고 양보의 미덕이 넘쳐난다. 봄이 가져다준 여유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영주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 비껴다리를 앞에 두고 양보의 미덕이 넘쳐난다. 봄이 가져다준 여유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수도리 무섬마을

영주의 대표 관광지가 된 수도리다. 물 위의 섬, 물이 감고 지나는 땅, 무섬마을이란 이름이 귀에 친밀하게 감긴다. 사실 휴일에 찾는 무섬마을은 복잡했다. 수학여행지처럼 사람 반, 주차차량 반이었다. 정신없이 외나무다리만 건넜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평일에 와 보고서야 이곳이 얼마나 차분하고 고요한 곳인지 안다. 사람들을 비워낸 여백을 둘러본다. 자연의 소리가 증폭된다. 폭 30cm, 길이 150m 남짓 외나무다리가 여백을 가른다. 다듬어지지 않은 물소리와 바람과 봄볕이 어울려 내성천변에서 뛰어 논다.

초가와 기와집이 한데 어울리는 무섬마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지로 3.1절 100주년을 맞은 올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초가와 기와집이 한데 어울리는 무섬마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지로 3.1절 100주년을 맞은 올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350년 역사의 외나무다리는 무섬마을의 상징이다.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였고 무섬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유일한 길이었다. 1983년 현대식(이라 통용되지만 준공 30년이 지나 낡아 보이는) 수도교가 놓이면서 사라졌던 외나무다리는 2005년 다시 놓인 것이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맞은편에서 온다. 양보의 미덕이 쌓여가는 '비껴다리'에서 길을 터준다.

3.1절 100주년을 맞은 올해 무섬마을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100가구도 안 되는 무섬마을이지만 독립운동 서훈을 받은 이들만 다섯 명이나 된다. 지금이야 추억소환재 역할을 맡은 외나무다리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힌 이들이 이 다리를 건너 압송됐다.

최근 복원된 아도서숙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다. 1928년 일본에서 공부하다 귀국한 김화진이 세운 학교였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가르쳤다. 가르침은 행동이 됐다. 이곳에서 배운 학생들은 영주 지역 항일운동 단체의 주축이 됐다. 일제는 광분했다. 아도서숙을 불살랐다. 개교 5년 만이었다. 김화진 역시 투옥과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 직후 숨졌다.

무섬마을은 350년 전 반남 박씨가 자리 잡았던 곳에 사위였던 선성 김씨가 함께 들어와 살면서 이룬 집성촌이다. 요즘 말로 장인과 사위의 콜라보다. 영양 주실마을의 시인 조지훈도 이 마을의 사위였다.

안동 하회마을처럼 무섬마을 주민들은 일상을 반쯤 내놓고 산다. 수시로 관광객들이 들여다보고 간다. 앞마당은 이미 내 집이 아니다. 전통마을들이 숙명처럼 감수하는 부분이다.

◆봉황산 부석사

소백산과 가까이 있다 해서 부석사가 소백산에 있지는 않다. 부석사는 봉황산 자락에 있다. 크게는 태백산의 일부라 해서 일주문에 '태백산 부석사'라 적혀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 소백산을 앞에 두고 넘어가는 해를 찬탄하며 볼 수 있다. 왜 정규방송이 끝나고 나오는 애국가 화면에 고정적으로 실리지 않는 건지 의아하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어느덧 중고교생 필수 교양도서가 돼버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일찍이 "태백산맥 전체가 무량수전의 앞마당이며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이라 했다. 왜 태백산맥이라 했을까. 손에 잡힐 듯한 소백산이 날 것 그대로의 맥을 드러낸다.

부석사는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통도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가 한데 묶였다.

부석사를 창건한 이는 의상대사다. 우리나라 사찰의 절반은 의상대사나 원효대사가 연관돼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사찰 창건에 관여한 고승들은 대개 이야깃거리도 두어개씩 남기는데 후대가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라는 쪽에 무게감이 실리지만 굳이 아닐 것이라 부인하기도 애매한 게 훈훈한 이야기들뿐이다. 아리따운 처녀가 등장하고, 뭔가 도움을 주고, 인연으로 남고, 또 결초보은한다는 구성이다.

부석사 안양루 옆에서 내려다본 해질 무렵의 소백산맥. 우리 산하를 앞마당으로 삼은 부석사의 개방성이 압권이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부석사 안양루 옆에서 내려다본 해질 무렵의 소백산맥. 우리 산하를 앞마당으로 삼은 부석사의 개방성이 압권이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부석사도 그렇다. 의상대사를 사모한 선묘낭자가 몸을 던져 바다의 용이 돼 도적의 위협을 받은 의상대사의 뱃길을 지켰다고 한다. 또 도적 무리가 사찰 창건을 방해하자 거대한 바윗돌을 띄워 도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부석(浮石)'의 유래다.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나무로 자랐다는 '선비화'는 보너스 트랙이다. 할머니 이야기보따리 속에서 꺼낸 듯 교과서적이다.

그러고보니 부석사만큼 문학작품에 많이 인용되고 모티브가 된 곳도 없다. 대표적인 것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로 시작되는 정호승 시인의 '그리운 부석사'다. 실제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힐링 공간, 마음 속 안식처로 부석사를 꼽기도 했다.

봄꽃과 신록으로 둘러싸인 부석사.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처마가 더 날렵해 보이는 봄이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봄꽃과 신록으로 둘러싸인 부석사.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처마가 더 날렵해 보이는 봄이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무량수전의 일몰과 콩세계과학관

일몰을 카메라에 담겠노라며 기다리는 이들이 무량수전 주변을 이리저리 서성인다. 사냥감을 공략할 지점을 포착한 맹수 같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기다린다. 저러다 득도하면 어쩌나 싶을 만큼이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는 무량수전에서 찍은 어떤 사진에서든 모델로 등장한다. 흘려 쓴 안양루(楼) 편액은 마치 안양앵(桜)처럼 보인다. 여기저기서 벚꽃을 얘기하니 글자마저 그리 보인다. 그렇다, 봄이다.

마침 봄나들이 나선 이들을 위한 추천지가 있다. 부석사 가는 길에 '콩세계과학관'이 있다. 충북 단양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소백산 마구령이 코앞인 시골마을에 2015년 세계 최초로 콩을 테마로 과학관을 만든 것이다.

콩세계과학관에서 어린이들이 콩 체험 활동으로 메주를 만들고 있다. 영주시청 제공
콩세계과학관에서 어린이들이 콩 체험 활동으로 메주를 만들고 있다. 영주시청 제공

무슨 생각에서 그랬나 보니 우리나라에서 처음 콩이 재배되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토종 콩의 명맥을 이어온 '부석태'의 고장인 부석면에 만든 거라고 한다. 콩체험 프로그램 등이 있어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알려질 만큼 알려진 곳이다.

'롤라이더'가 제법 입소문을 탔다. 관람요금이 없다. 10세 미만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들러도 후회하지 않을 곳이다.

소수서원 초입에 늘어선 소나무숲. 일명 솔숲이라 불리는 학자수가 관광객들에게 청량감을 더해준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소수서원 초입에 늘어선 소나무숲. 일명 솔숲이라 불리는 학자수가 관광객들에게 청량감을 더해준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사립대 캠퍼스, 소수서원

순흥은 조선 초기 전국 18개 도호부로 출발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1413년 도호부로 승격됐을 정도로 위세가 있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도호부는 75개까지 늘어났다. 순흥도호부는 강원 영월, 충북 단양, 경북 예천까지 아우르던 행정의 중심이었다. 무엇보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사립대 캠퍼스가 생긴 곳이었다. 소수서원이다.

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두 사람이 학교 설립에 불을 지폈다. 주세붕과 이황이다. 국사 교과서에 최초의 사액서원이라고 소개된다. 쉽게 말해 국가가 책, 토지, 노비를 하사한 건 물론이요, 세금 혜택까지 준 곳이다.

통일신라 사찰인 숙수사가 있던 곳이다. 불교국가이던 신라가 점찍어뒀던 터가 좋은 땅을 캠퍼스로 만들었다. 동문회를 하면 유명인사가 꽤 있다. 학봉 김성일, 약포 정탁, 오리 이원익, 한음 이덕형, 미수 허목 등 당대 내로라하는 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실제로 동문회를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이어 서원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다. 9개 서원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라 있다. 대구경북에는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도동서원, 옥산서원이 있다.

소수서원은 지금이라도 캠퍼스로 삼아도 좋겠다 싶을 만큼 주변이 차분하다. 풍광에 초점을 맞춰 보니 또 관광지다.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오면 웬만한 도심 속 캠퍼스보다 낫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지만 150년 가까이 기능을 잃었다. 그래도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정신 수양하는 곳으로 제격인 듯하다.

소수서원의 랜드마크가 된 취한대에서 관광객들이 잠시 쉬어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소수서원의 랜드마크가 된 취한대에서 관광객들이 잠시 쉬어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눈 맞은 모습이 일품인 취한대와 그저 솔숲이라 불리는 학자수, 수많은 경자 씨들을 설레게 한 경자(敬字)바위[경짜바위] 등은 소수서원의 랜드마크로 소개된 곳들이다. 의미를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나 자세한 건 안내판에 맡긴다. 우리는 그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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