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이 경쟁력이다] <7> 텃밭농사의 가치와 매력 훼손

입력 2019-04-01 17:11:02 수정 2019-04-04 19:56:46

"몰래 농약·비닐 사용 싫어요…'정성' 거름 뿌려 주세요"

'텃밭농사'라는 말에는 '작은농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농부 1명이 1만평(33,000㎡) 농사를 짓는 것이 전업농사라면, 텃밭농사는 동일한 1만평(33,000㎡) 농사를 짓더라도 텃밭농부 1000명이 10평(33㎡)씩 짓는다는 함의가 있는 것이다.

1만평(33,000㎡) 농사를 짓는 생업농부는 경제적 수익을 목표로 하지만, 10평(33㎡) 농사를 짓는 텃밭농부는 금전적 수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농사 규모와 목표가 다른 만큼 짓는 방식도 다르고, 얻는 결과도 달라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일부 텃밭농부들은 생업농부와 같은 방식을 고집해, 스스로 텃밭농사의 매력과 가치를 떨어뜨린다.

◇ 몰래 농약 치는 텃밭농부들

대구시내 한 공용 텃밭에서는 가끔이기는 하지만 살충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밤 혹은 이른 아침, 다른 농부들이 없는 틈을 타 누군가가 자기 텃밭에 살충제를 살포한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대구시에서 지원하는 학교텃밭 사업을 신청하면서 '재료비' 항목에 '농약구입'이라고 기입하는 사례도 있다. 텃밭은 기본적으로 친환경을 지향하는 '작은농사'라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한 텃밭농부가 고추밭을 친환경 풀멀칭으로 덮었다. 고추는 여름 장마가 지나고 고온기를 맞이하면 병해충에 시달리는데, 이처럼 풀로 덮어주면 빗물에 흙탕물이 튀는 것을 방지해 병해를 상당히 예방할 수 있고 풀도 막을 수 있다. 조두진기자
한 텃밭농부가 고추밭을 친환경 풀멀칭으로 덮었다. 고추는 여름 장마가 지나고 고온기를 맞이하면 병해충에 시달리는데, 이처럼 풀로 덮어주면 빗물에 흙탕물이 튀는 것을 방지해 병해를 상당히 예방할 수 있고 풀도 막을 수 있다. 조두진기자

그런가 하면 봄에 텃밭농사를 시작할 때는 없었던 비닐 멀칭이 여름이면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처음 텃밭농사를 시작할 때는 관리자의 안내와 주의에 따라 비닐멀칭을 할 엄두를 내지 않던 사람들도 봄 농사를 마치고, 여름농사를 준비하면서 비닐 멀칭을 하는 것이다.

비닐멀칭이 친환경농사법이라고 주장하는 농부들도 있다. 비닐 멀칭을 하면 빗물이 거의 유입되지 않으니 비료분 유출이 적고, 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지온을 빨리 올릴 수 있고, 가뭄이나 장마 피해를 입지 않고, 흙탕물이 튀지 않아 병해충이 적고, 비닐 속 흙이 늘 촉촉해 작물이 더 잘 자란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 비닐멀칭은 환경오염원 전가

비닐멀칭은 농사에 이점이 많다. 그래서 많은 생업농부들이 비닐멀칭을 한다. 하지만 비닐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고려하면 결코 친환경농사라고 할 수 없다. 비닐멀칭을 한 덕분에 내 농작물에 살충제를 뿌리지 않을 수 있고, 풀 걱정 없이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내 밭에서 발생할 환경오염을 다른 곳(공장 혹은 쓰레기장)으로 전가했을 뿐이다.

무분별한 비닐멀칭으로 엉망이 된 텃밭. 비닐멀칭과 농약 사용은
무분별한 비닐멀칭으로 엉망이 된 텃밭. 비닐멀칭과 농약 사용은 '작은농사'를 지향하는 텃밭농사의 가치와 매력을 철저히 훼손하는 농사방법이다.

생업농부들이 비닐멀칭을 하고, 농약을 뿌리는 것은 경작면적이 워낙 넓어 일일이 풀을 뽑거나 벌레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면적을 가꾸는 텃밭농부는 비닐멀칭을 할 것이 아니라 정성껏 텃밭을 관리함으로써 병해충을 막고, 자주 풀을 뽑는 방식이 적합하다.

대구어린이농부학교 김효선 교장은 "10평 안팎의 텃밭이라면 아무리 풀이 많아도 2시간이면 다 뽑을 수 있다. 그것도 2주에 한 번씩이면 충분하다. 비가 안 올 경우에도 2주에 한번만 물을 주면 된다." 며 "텃밭에서 비닐멀칭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조언한다. 비닐이 환경오염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경관도 해치기 때문이다.

◇ 퇴비는 많이 뿌려도 된다고?

채소를 크고 모양 좋게 키우기 위해 퇴비를 듬뿍 주는 것도 텃밭농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퇴비는 화학비료와 달리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해 퇴비를 무한정 살포하는 텃밭농부들도 많다.

이솜결 대구시 농업기술센터 소장은 "퇴비도 과잉되면 화학비료와 다를 바 없다. 식물체에 흡수되지 않고 남은 성분이 빗물을 타고 흘러가 땅과 강을 오염시킨다. 게다가 퇴비든 비료든 많이 투입하면 채소 덩치가 커지고, 질감이 부드러워져 벌레들이 많이 꼬인다. 벌레가 창궐하면 농약에 유혹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고 말한다.

생업농부들은 그나마 정기적인 토질검사와 정확한 매뉴얼에 따라 농약과 비료를 적정량 살포한다. 하지만 텃밭농부들은 주먹구구로, 대충 많이 투입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여러 사람이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생업농부들과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오히려 환경을 더 해칠 수도 있다.

◇ 텃밭농부가 환경 더 해칠 수도

생업농부들이 속이 꽉 찬 배추 1포기 수확할 때 텃밭농부들은 속이 헐렁한 배추 3포기를 수확하면 된다. 생업농부들은 수확한 채소를 내다팔아야 하지만, 텃밭농부들은 자가소비와 이웃나눔을 목표로 한다. 좀 못나도, 좀 작아도, 속이 좀 헐렁해도 상관없다. 김장을 해놓으면 속이 꽉 찬 배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물컹물컹해지지만, 텃밭에서 키운 헐렁한 배추는 오래 두어도 아삭아삭하니 오히려 낫다. 텃밭농부라면 퇴비든 비료든 가능한 적게 주고, 작게 키우는 것이 텃밭농사의 가치와 매력을 살리는 길이다.

1000명의 농부가 10평(33㎡)씩 1만평(33,000㎡) 농사를 짓는 '텃밭농사'는 단순히 개인별 농사면적을 줄이자는 말이 아니다. 거기에는 대량재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도시농부 한무일씨는 "텃밭농사에는 농약과 비닐, 기계의 힘을 빌리는 대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친환경 농사를 짓자는 의미가 내포돼 있음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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