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4월 2일 성주장날 열렸던 대규모 독립만세운동 같은 날 재현

입력 2019-04-01 11:42:24 수정 2019-04-01 13:34:05

1919년 4월 2일 성주장날에 열렸던 대규모 성주독립만세운동이 100주년을 기념해 2일 재현된다.

성주파리장서 및 4.2독립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성주파리장서 및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이날 학생과 주민 등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주시장과 성주읍, 성주군청 일원에서 개최한다.

2일 오후 5시 유림과 학생, 주민 등 3천여 명은 읍면별로 이천강변에 모인 후 풍물패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성주장터로 향한다.

장터에서는 만세운동을 탄압하는 일본 순사들의 상황극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플래시몹과 100주년을 기념하는 '100북' 공연도 이어진다. 성주청년유도회의 격문(통고국내문) 낭독이 끝나면 곧바로 성주군청 광장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한 후 문화제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성주의 독립만세운동 100주년 재현 행사는 지금까지 열린 지자체 행사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또 주민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민간주도로 준비·추진되는 것도 다른 지역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와 차별된다.

추진위는 지난 1월 발족 이후 백세각에서 격문(통고국내문) 인쇄하기, 태극기 그리기 행사와 대형 태극기에 손바닥 찍기 행사, 학술대회 등 빈틈없이 행사를 준비해왔다.

성주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7일부터 4월 6일까지 성주읍 성주장터, 선남면, 가천면, 벽진면, 수륜면, 대가면, 월항면 등 7곳에서 8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당시 참여인원은 3천300여 명으로, 그중 체포당한 인사는 133명, 투옥된 인사 52명이다. 일본 경찰의 총격으로 다친 인사는 20여명, 순직자는 3명이었다.

특히 성주는 심산 김창숙 선생이 주도한 파리장서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파리장서에 서명한 전국 유림 137명 가운데 성주인이 15명으로 가장 많다.

추진위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치열했던 성주의 독립운동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성주의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