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나의 성실한 연출자

입력 2019-03-21 11:05:19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연출가, 특히 극(劇) 연출가는 문자(文字)로 된 작가의 대본을 현실화(現實化)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공연장이 되었든 혹은 길거리가 되었든 작가가 그의 상상력과 사상을 발휘하여 문자로 만들어 놓은 허상(虛像)의 것을 현실에 실현(實現)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대본을 면밀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퇴고(推敲)라는 말에서 보듯 작가가 그 시대적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여러 배경 상황을 고려하여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쓴 대사의 어휘를 연출자의 무지(無知)로 마음대로 그 어휘를 바꿔 버린다면 아마도 그 극의 전체 내용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바뀌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 연출자가 조금씩은 의도적으로 작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대본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사상이나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주제에 맞게 대본에 쓰여진 텍스트를 왜곡 없이 표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출가는 무조건 대본에 쓰인 대로만 작품을 만드는 맹목적인 존재는 아니다. 작가의 의도를 면밀하게 파악한 한 후 그 작품을 무대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연출자만의 사고와 생각의 방식을 접목하여 현실화시킨다. 그래서 같은 대본이지만, 연출자가 누구인지 그 연출자가 얼마만큼의 역량을 가졌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본다면 연출가는 어쩌면, 누군가의 꿈을 현실화(現實化)시키기는 아주 매력적인 일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작가가 머릿속으로 자신이 꿈꾸던 상상의 이야기를 글로 써 놓으면 연출가는 그것을 현실에서 직접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가지고 미래의 인생을 계획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이 하나의 공연 작품이라면, 나의 인생이라는 작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대본을 쓰고 내가 직접 연출을 해야만 한다. 연출자가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잘 쓰여진 대본을 원하듯이 우리가 원하는 멋진 인생의 연출을 위해 내 인생의 대본을 써 나가야 하는 시기부터 그것이 잘 현실화될 수 있도록 탄탄한 내용과 구성의 대본을 먼저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연출의 과정에서는 성실한 연출자의 자세로 나의 대본에는 나의 어떤 사상과 가치관을 담아 놓았는지 면밀한 대본의 파악 과정을 진행해야 함으로써, 다가올 나의 인생이라는 무대를 잘 연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꿈꾸던 나의 인생은 지금의 나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는 것일까? 삶이 팍팍하고, 상황이 어렵다는 핑계로 충실히 순수한 마음으로 잘 써 놓은 대본을 무시한 채 대본과는 동떨어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무대를 위해, 성실한 연출자로서 한번 더 나의 인생대본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제안 해 본다.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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