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 '북·미' 거명관행의 문제점

입력 2019-03-21 02:30:00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미·북' 아닌 '북·미' 호칭 일반화

한미 동맹에 심각한 악영향 초래

국가의 존립에 도움을 주는 동맹

더 중요시하고 존중해줘야 마땅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거명할 때 '북·미'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북·미 관계'니 '북·미 회담'이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북·미' 거명 관행의 일반화는 더욱 심해졌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집권당의 전체 당원과 행정부의 거의 모든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북미'라고 말하고 있다. '북·미' 거명 관행의 일반화는 미국이 그것의 함의를 파악하게 되면 한·미 동맹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언어생활에서는 복수의 인간이나 집단을 동시에 언급하게 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존중해야 할 대상을 먼저 언급하고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덜 존중해도 될 대상을 뒤에 언급한다.

이러한 관행은 복수의 국가를 동시에 언급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한과 북한을 동시에 언급할 때는 반드시 '남·북'이라 말하고,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언급할 때는 반드시 '한일'이라 말하며, 한국과 미국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한·미'라고 말한다. 만일 한국인 가운데 '일·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친일파로 매도당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정부와 주민은 남북 회담을 언급할 때 언제나 '북·남 회담'이라고 말하고, 북한과 중국을 말할 때 '조·중'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과 중국을 동시에 언급할 때는 '중국과 남조선'이라고 말한다. 결코 '남·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북한 주민이 '남·북 회담'이라고 말하게 되면 그는 반혁명분자로 처벌될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어법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이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언급할 경우 '미·북 관계'니 '미·북 회담'이라고 말하지 않고 '북·미 관계'니 '북·미 회담'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북한을 미국보다 더 중요하고 더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뜻한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격하려는 적이고, 미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을 도와주는 동맹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미·북'이라 말하지 않고 '북·미'라고 말하는 것은 적을 동맹보다 더 중요하고 더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고 선전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적의 공격을 도와주고 대한민국에 대한 동맹의 지원을 약화시키는 행동이다. 나아가서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과의 동맹을 파기하도록 충동하는 행동이다.

'북·미' 거명 관행을 선택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오늘날과 같은 남북 화해 시대에 북한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주장은 화해 추구 과정과 화해 성공을 구분할 줄 모르는 잘못된 주장이다. 우리가 북한과 화해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북한은 여전히 우리의 적이다. 화해 추구 과정에서 진전이 없으면 다시 싸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우리의 적이 아니게 되는 것은 남북 화해가 실질적으로(말이나 문서를 통한 선언으로서가 아니라 실효적 행동을 통해) 성공한 시점부터이다.

'북·미' 거명 관행을 선택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북한이 우리와 같은 민족 국가이므로 이민족 국가인 미국보다 더 중요시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주장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잘못된 주장이다.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는 국가의 존립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개인·집단·국가를 중요시하고 존중해야 하며, 국가의 존립에 피해를 주는 개인·집단·국가를 배격해야 한다. 그 대상이 동족이냐 이민족이냐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이러한 이치는 6·25전쟁 때 동족 국가인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려 했고, 이민족 국가인 미국이 멸망의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구원해 준 사실을 상기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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