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 독일이 소련으로 쳐들어간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보라는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 외상(外相) 몰로토프가 소련 주재 독일대사 슐렌베르크에게 한 하소연이다. 폴란드에 이어 프랑스까지 집어삼킨 독일이 영국마저 굴복시키기 전에는 소련을 치지 않을 것이란 스탈린의 소망적 사고가 초래한 굴욕이었다.
스탈린은 당시의 세계정세를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틀에 맞춰 '해석'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시장 확보와 식민지 획득 경쟁을 멈출 수 없어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자멸적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자본주의 진영을 삼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스탈린의 생각에 그 전쟁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든 그 승리는 최후의 승자까지 멸망으로 이끄는 '피루스의 승리'일 터였다.
이런 계산은 철저히 자기본위적이었다. 히틀러의 세계 정복 계획에서 소련을 식민지로 만드는 '레벤스라움'(생활공간)은 상수(常數)였다. 이는 비밀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대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에 막대한 군수물자를 보냈다. 영국과 독일 모두를 소진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소련은 독일과 피투성이 싸움을 벌여야 했고 천신만고 끝에 이기기는 했지만 2천만 명이 희생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문재인 정부의 행태도 이와 똑같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으며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기게 할 유력한 수단은 대북제재가 아니라 남북경협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안타깝게도 이런 믿음은 한 번도 입증된 적이 없다. 소망적 사고일 뿐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부터 그렇다. 실패한 지난 25년간의 북핵 협상은 북한은 핵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나긴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1·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그 깨달음의 고통스러운 반복이었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여전히 미몽(迷夢) 속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미국의 참관과 검증 하에 영구히 폐기되는 것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했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절망적 확증 편향이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영변 핵시설이 여전히 가동 중이라고 했다.
남북경협의 맹신도 마찬가지다. DJ의 '햇볕정책'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DJ의 '햇볕'은 핵 개발을 저지한 것이 아니라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밑천이 됐다. 25년간의 북핵 협상도 마찬가지다. 중유 제공 등 막대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했지만 허사였다. 모두 경제적 유인책으로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구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으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식 비핵화'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김정은식 비핵화'란 '무늬만 비핵화', 곧 비핵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북한에 남북경협은 핵 능력을 늘리라고 돈을 보태주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남북경협에 안달한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핵 담판'에서 북한이 비핵화할 뜻이 없음이 재확인됐는데도 "남북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 운운했다. 남한 국민을 북핵의 인질로 내줄 작정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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